'화장' 안성기 "베드신, 러닝셔츠 입은 이유는…" [인터뷰①]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4.07 06: 43

배우 안성기에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이다. 그럴 만도 하다. 다섯 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해 지금껏 영화 128편에 출연했다. 연기 생활 58년 동안 추문이나 스캔들도 없었다. 덕분에 신뢰감을 주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굳건히 충무로를 지켜왔다.
그런 의미에서 9일 개봉하는 영화 '화장'(감독 임권택, 제작 명필름) 속 오상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안성기와 다르다. 인자한 미소는 사라진, 피곤에 찌든 얼굴부터 관객들을 맞이한다. 죽음을 앞둔 아내(김호정)에게 헌신적이지만 어딘가 차갑고, 마음을 빼앗긴 부하 직원(김규리)을 시선으로 집요하게 더듬는다.
'화장'에는 안성기의 또 다른 도전이 등장한다. 베드신이다. 그동안 안성기의 출연작을 떠올리면 보기 드문 장면이다. 물론 선정성 보다는 처연함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오상무란 인물이 끝까지 품격을 잃지 않는 것도 안성기 덕분이다. 

 
- 영화는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에서 선공개됐다. 지금까지 몇 번 정도 봤나.
"베니스과 부산에서 제대로 봤다. 반응이 가장 좋은 곳은 베니스였다.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당시 처음 완성본을 봤다. 관객의 마음이었다. 감정이 절제되고, 빠르게 흘러가는 편집이 좋았다. 이야기 자체가 한국이나 외국이나 공감할 만한 소재이기 때문에 더 큰 반응을 보인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영화제의 특수성이 있다. 아무래도 관객들이 열린 마음을 보여준다. 일반 관객들은 지불한 금액만큼 보답을 받고 싶어한다.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50년 넘게 영화를 해도 흥행에 대한 걱정이 있나.
"투자하는 사람이나 제작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다. 그런 부담은 늘 있다. 잘 되면 더 이상 좋은 게 없지 않나. 배우 생활하면서 가장 기분 좋을 때가 개봉한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고, 그 동안 마음에 드는 새 영화을 찍고 있을 때다. 가장 좋고, 황홀한 기분이 든다. 요즘은 뜸하게 작품을 하고 있지만."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초기 단계에서 합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사 명필름 쪽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아마 감독님과 같이 생각한 것을 나에게 전달한 것 같다. 집에 책이 많진 않지만, 이상문학상 전집이 있다. 단편 소설을 좋아한다. 단편은 짧은 분량이지만 기승전결이 명확하다. 영화의 감성과 느낌을 갖는데 도움을 받을 것이란 마음에 단편을 많이 보고 있다. '화장'은 더욱이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문체가 독특했다. 좋은 충격을 받았다. 심오하면서 문학적이라 영화화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영화로 만든다니까 반가웠다. 이젠 중년을 넘어섰지만, 마음은 중년이다. 중년에 맞는 상황과 고민, 갈등, 심리를 다루는 영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최근작 중에서 안성기의 얼굴을 가장 가깝게 담아낸다. 어떻게 준비했나.
"특별히 준비할 게 없었다. 상황을 상상하면서 에너지를 쏟아 붓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촬영하는 내내 힘들었다. 평소에 농담을 좋아하는데, 그런 감정을 억제해야 했다. 침전돼 있는 느낌, 조용하고 사색적인 분위기의 현장이었다."
- 회식 장면에서 춤추는 부하직원 추은주(김규리)를 지켜보는 오상무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카메라가 깊게 들어온 장면이다. 사람의 심리를 ‘관음’하는 듯하다. 추은주를 샅샅이 본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듯 한 표현이라고 할까. 보통 때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시선이다. 처음 찍어보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집중을 많이 했다. 찍고 나서 모니터를 보고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고무됐다."
-베드신이 등장하다. 상의를 입고 등장한다. 사모님 때문인가. (웃음)
"죽어가는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데 의상을 다 벗고 한다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것 같았다. 의도와 다른 해석이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서 러닝셔츠을 입은 채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 '화장'은 추은주와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마음속의 상상이다. 만약 화면으로 표현됐다면 거북했을 것 같다."
-추은주와 감정을 교류하는 장면이 사실상 거의 없다.
"처음 시나리오는 추은주와의 감정 교류가 좀 더 노골적이었다. 다른 영화와 차별화가 덜 되는 느낌이었다. 지금처럼 감정이 절제되고 깔끔한 것이 처음 생각한 '화장'과 맞다."
-임권택 감독과 8번째 호흡이다.
"감독님은 예전 스타일을  고수하고 계시다. 콘티나 스토리북 없이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그때 컷을 나누고 앵글을 생각하신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인데 나는 경험을 많이 해서 어색함이나 어려움이 없다. 현장에 맞는 동선이란 게 있다. 거기에 빨리 적응을 해야 하는데, 감독님의 스타일이 순발력이 있다. 물론 블록버스터는 그렇게 가면 안 되겠지만, '화장'은 사람 중심 영화니까 그런 작업들이 맞았다. 이제 감독님의 눈빛과 표정만 봐도 뜻을 알 수 있다."
- 안성기나 김규리와 달리 아내 역의 김호정은 임권택과 첫 호흡이었다.
"영화를 많이 안 해서 현장 메커니즘에 대해 익숙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굉장히 열려 있는 사람이라 금방 흡수한다. 암 환자 캐릭터여서 굶어죽지 않을 만큼 소식했다. 스스로 어려움은 없었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 집중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인물과 가까이 가는 구나'라는 만족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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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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