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그것은 스크린이었다.' 영화를 열렬히 사랑했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말이다. 배우 안성기에게는 '스크린, 그것은 인생이었다'가 맞는 표현일 듯하다. 그는 다섯 살에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58년 동안 128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뿐인가.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등 영화 안팎으로 활동하며 충무로를 지켜오고 있다.
9일 개봉하는 영화 '화장'(감독 임권택, 제작 명필름)이 특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안성기는 극중 죽음을 앞둔 아내(김호정)을 두고 젊은 여직원(김규리)에게 흔들리는 주인공 오상무 역을 맡았다. '국민배우' 안성기와 '거장' 임권택의 만남. 젊은 배우와 감독을 선호하는 영화계에서 두 노익장은 그들의 건재함을 확실히 말해준다.
- '화장'은 '부러진 화살'(2011) '페이스 메이커'(2012) 이후 몇 년 만에 주연작이다. 그 사이에는 특별출연이 많았다.
"예전보다 작품은 덜 들어온다. 이 나이 대에 맞는 역할이 많지 않는 것 같다. 일반적으론 거의 없다. '힘 좀 실어 달라'며 카메오로 나와달라는 게 많다. 그런데 아쉽다는 반응이 있어 올해부터는 하고 싶은 작품만 해야겠다는 마음이다. 도움을 못 주는 상황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 안성기란 이름이 지닌 책임감 때문인가.
"찍을 땐 잘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한 후 관객들에게 '(안성기가)존재감 없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스태프들은 고사부터 시작해 끝날 때까지 긴 여행을 한다. 카메오로 출연하면 촬영할 때 잠깐 가는 거라 낯설다. 촬영하면서 스태프와 출연진과 함께 생활하고 추억도 나눠야 하는데, 며칠 잠깐 있다가 쏙 빠지면 굉장히 외로워진다. 그런 두가지 이유로 카메오 출연이 쉽지 않다. 배우로서의 욕심은 아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이후 주연에 대한 욕심은 접었다. 조연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예전에 이미 끝난 고민이다. 하지만 존재감이 없을 때는 힘들어 진다. 분량에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걸 해야겠다 싶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다. 영화제를 둘러싸고 많은 말들이 오가는데.
"부집행위원장은 타이틀에 불과하다. 영화제 기간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독려하는 것 정도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에서 열리고, 부산에서 지원을 많이 한다.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인데 그 의미와 크기는 '대한민국국제영화제'라고 생각한다. 부산시에서도 그것에 대한 배려를 해주시면 좋겠다. 세계 어떤 영화제를 봐도, 영화제에선 모든 것이 공개된다. 영화 상영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이 해주지 않을까 싶다. 국제영화제 영화 상영에 대해 어떤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 잣대는 무엇이며 그만한 권한이 있는가 싶다. 서로 다툼과 신경전으로 가기 보단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 마음들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부산국제영화제 뿐만 아니라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등 각종 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변 경조사도 다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다. 생각하기에 따라 있다. 경조사는, 가기 싫은데 가는 게 아니라 경조사에 참석하면 매우 좋아해주기 때문이다. 가지 않아서 상대방이 섭섭함을 느끼는 것보다 그게 더 좋다. 경조사는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못 봤던 이들을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하고,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들이다.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가지'라고 생각하면 정말 헛된 시간이다."
- 요즘 충무로에서는 안성기라는 배우에게서 어떤 그림을 요구하나.
"외화에서는 나이가 든 배우들이 사악한 사람으로 많이 나오더라. 알고 보면 그 사람이 다 꾸몄다는 식이다. 그런 건 하고 싶지 않다. 중국배우 성룡도 철저한 자기 철학이 있지 않나.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한때는 악역을 해볼까 생각했다. 요즘은 거기에 대해 편안해졌다. 반드시 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좋은 거 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역할도 해야 할 것이 많다. '악역으로 나오면 좋을거야'라는 데 현혹되지 않는 게 쉽지 않다. 내가 가진 개성이나 느낌을 깊이 있게 담고 싶다."
-요즘 열망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나.
"영화? 한결 같은 것 같다. 좋은 영화하는 게 중요하다. 좋은 영화를 해서 관객들이 좋은 감동을 받는 것, 그 이상은 없는 것 같다."
jay@osen.co.kr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