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그 흔한 ‘인간 병풍’ 하나 없는 드라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어 풍성한 이야기 구조를 보인다. 단편적이지 않고 가지에 가지를 치는 이야기, 독하고 자극적이지 않은데도 어느새 새로운 가지가 툭 튀어나온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지난 6일 방송된 13회에서 바람 잘 날 없는 양쪽 집안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서봄(고아성 분)의 언니이자 허영심이 있는 서누리(공승연 분)가 대형 사고를 친 것. 철저한 ‘을’이었던 누리가 상류 사회에 진입하고자 벌이는 일들이 봄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봄의 시댁인 한정호(유준상 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순차적으로 담겼다.
보통 드라마는 호흡이 긴 가족드라마가 아닌 이상 주인공 몇몇에게만 이야기가 배정되기 마련. ‘풍문으로 들었소’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받쳐주기 위해 등장하는 ‘인간 병풍’이 없는 탄탄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표현법은 없다. 클리셰가 없는 창조적인 기법으로 이야기를 묶는다. 그렇다고 산만하거나, 각각의 이야기가 따로 노는 게 아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속물 근성을 꼬집는다는 공통적인 접근법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가 된다.
이날 누리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호의 도움으로 방송국에 입사한 후 재력가의 아들과 얽히고자 발버둥을 치면서 결국 간신히 시댁의 괄시를 받지 않게 된 봄이에게 먹구름이 생기는 이야기였다. 동생이 상류층에 물드는 모습을 보며 동경과 시기 어린 시선을 보냈던 누리가 기어코 문제를 일으켰다.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이를 표출하는 외적인 차이가 있을 뿐, 등장인물들의 당장의 세속적인 이익에만 몰두하는 성향은 똑같았다.
누리의 허영심은 한순간에 툭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감독은 보일 듯 말 듯 밑밥을 깔아오며 개연성을 만들어왔다. 시청자들은 중반 이후 누리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봄이를 바라보는 흔들리는 눈동자, 허영에 들뜬 누리의 속마음이 차곡차곡 쌓였다. 13회에 누리가 밤늦게까지 상류층 모임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 같은 소문이 정호의 귀에까지 들어오는 작은 파장은 당위성 있게 그려졌다.
사실 그동안 누리 역의 공승연은 다른 배우들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상황. 보통 드라마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 대표적인 주변 인물인 정호 가족의 비서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벗겨질 때도 잠잠했다. 조용했던 것만큼 누리가 일으킨 잡음의 충격은 중반에 접어든 ‘풍문으로 들었소’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다가왔다. 두 대가가 호흡을 맞춘 작품인 ‘풍문으로 들었소’는 배우는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도 ‘기다리면 차례가 온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알고 보니 000였더라’라는 한국 드라마가 가진 ‘비밀 까기’의 전개 없이도 드라마를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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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