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쪼개기] '풍문', 갑 풍자? 을이 제일 밉상인 이유
OSEN 박정선 기자
발행 2015.04.07 10: 48

갑질하는 갑 보다 비겁한 을이 더 미움받는 세상이다. 적어도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세상에서는.
'풍문으로 들었소'는 알고 보면 지질한 갑들의 갑질을 폭로하는 블랙 코미디 드라마다. 일단 드라마에 대한 설명은 그렇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는 이들은 갑이 아닌 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갑을 욕하면서도 그런 갑이 되고픈 을이다.
극 중 이 을의 대표적 인물은 바로 서봄(고아성 분)의 언니인 서누리(공승연 분)와 아버지인 서형식(장현성 분)이다. 두 사람은 갑자기 로또 맞은 것처럼 신데렐라가 된 봄을 보며 갑의 권력과 재력을 부러워했다. 그 결과는 그토록 욕하던 갑에게 달라붙어 이를 조금 나눠주십사 비는 꼴이다.

지난 6일 방송분에서는 이러한 행태가 매우 잘 드러났다. 하루 아침에 상류층이 된 봄을 부러워하던 누리는 어머니가 고쳐 놓은 구두 대신 명품 구두를 신었다. 또한 평소 잘 이용하던 대중교통이 아닌 콜택시를 탔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상류층 자제들의 모임. 그 곳에서 누리는 몸부림쳤다. 자신 또한 상류층이 되게 해 달라고. 물론 그 뒷받침에는 봄이 건넨 신용카드와 봄의 시아버지 한정호(유준상 분)의 명예가 있었다.
누리를 20대 중반의 철없는 아이라고 치고 이해한다해도. 형식은 조금 달랐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이미 어른이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 속 형식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같다. 자신의 체면을 위해 사돈의 사업이라도 지원하려는 정호에게 형식은 사업계획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 허술한 사업계획서와 함께 사업 밑천 총액을 요구했다.
형식은 정호와 최연희(유호정 분)로 대표되는 갑에게 반발심을 보인 인물이다. 누리의 경우 처음부터 갑을 부러워하는 인물로 그려졌지만, 형식은 다르다. 그렇기에 형식의 이 같은 변심이 더욱 놀랍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왜 이 두사람을 밉상으로 '콕' 집었을까.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 이외에도 시청자의 미움의 화살은 봄의 시댁이 아닌 친정을 향했다. 이에 대해 한 방송 관계자는 "을이 을을 미워하는 것"이라며 "을의 행동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비겁하게 느껴져 오히려 더 미움받는다"고 해석했다. 드라마 속에서나마 정의를 부르짖고 갑에게 굴복하지 않는 을을 원하던 시청자의 아픈 곳을 찔렀다는 게 그 설명이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갑의 과장된 설정과 이야기로 쓴 웃음을 자아내는 게 목표인 드라마다. 그러나 을의 경우는 다르다.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외면하고 싶은데 오히려 더 아픈 곳을 쿡쿡 찔러오니 밉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이 드라마는 인간에 대한 남다른 시선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토록 현실적으로 사회의 계층을 해부한 작품은 없었다. 이 시선은 을에게도 가차없다.  갑이 사랑받고 을이 비난받는, '풍문으로 들었소'가 추구하는 극현실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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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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