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이 대중을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객들을 만난 바 있는 ‘화장’이지만 그건 맛보기에 불과했을 뿐, 이제 본격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화장’을 찾을 영화 팬들에게 한 가지 팁을 건네자면 ‘화장’은 그간의 임권택 감독의 영화와는 뭔가가 다르다. ‘천년학’, ‘취화선’, ‘서편제’ 등 한국의 전통 문화와 그 한 가운데에 놓인 사람을 그렸던 임권택 감독은 죽어가는 아내 옆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흔들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임권택 감독에게서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다. 그것도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에서 말이다.
이와 같은 도전에 임권택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생동감을 얻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간 자기 자신도 ‘임권택스러운’ 영화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조금 더 길게 영화인으로서의 생명을 이어가려면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노장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가정사 등의 이야기보다는 우리 문화나 우리 순환사 속에서 얽힌 이야기들을 주로 그려냈죠. 판소리 혹은 화가 등을 영화에 담았는데 너무 오래 그러고 있으니까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에서 벗어나야 감독으로서의 생명도 길어지고 생동감을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명필름에서 영화 제의를 받았고 이런 이야기라면 기왕에 도전하는거,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쉽지 만은 않은 도전이었다. 일단 수많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김훈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은 거장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자칫 잘못 했다간 큰 망신을 당할 것 같았단다. 그래서 선택한 돌파구는 ‘사실감’이었다.
“김훈 선생의 문장이 갖는 엄청난 힘과 박진감을 영화에 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촬영을 시작해보니 쉽지 않더군요. 소설이 워낙 뛰어나니까 자칫 잘못했다가는 큰 망신을 당할 것 같기도 하고 소화 불량에 걸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옮길 수가 없다면 사소한 삶이지만 이런 삶을 가진 사람의 삶 자체에 사실감을 주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보다 삶 자체에 사실감을 더한다면 그것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임권택 감독은 이제 관객들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떨린단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자신의 도전을 어찌 바라봐줄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미 수차례 ‘대박 영화’를 만들어낸 거장 감독도 또 다른 영화 개봉 앞에서 긴장하는 모습이 신기해 말을 건네니 “하도 작살난 게 많으니까 잘 되길 바라는 겁니다”라며 허허허 웃어보였다.
“오래 영화를 하다보니까 사람이 나이를 먹은 만큼, 세월을 산 만큼 누적된 경험들이 영화에 담긴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감각의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담겨지는 게 아니죠. 자기가 살아온 만큼의 영화가 나오는 겁니다. 좋은 영화, 나쁜 영화의 뜻은 아니고 지금까지 누적된 것을 뿌리로 인해서 세상을 보게 되는구나 싶은 거죠. 그렇게 보자면 ‘화장’을 80세에 찍고 있기 때문에 80세가 갖는 세상을 담고 있을 텐데 그런 영화가 20대나 40대, 이런 세대들한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합니다.”
103번째 영화, 우리는 임권택 감독의 도전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단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란다. 하지만 무엇보다, 거장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소재가 나타나야 임권택 감독의 103번째 영화를 만나볼 수 있을 듯 싶다.
“더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건데 100여 편의 영화를 해 오느라 다 까먹었네요(웃음). 살다가 만날지도 모르죠. 영화는 소재 안에 미쳐서 들어가야 되는 거니까. 한 번 더 조금 더 정제된 영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웃음).”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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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