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게 말하면 ‘불륜’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가 가능하지만 임권택 감독의 ‘화장’은 불륜이라고 정의하기엔 너무나 단순하다. ‘화장’ 속 남자 주인공은 삶에 대한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싶다.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매일같이 간호하며 죽음을 마주하는 남자는 ‘삶’을 대표하는 싱그러운 여인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 서 있는 남자를 그렸다고는 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선 이것이 불쾌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어찌됐든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기 때문. 이를 임권택 감독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안성기를 선택했단다. 안성기가 이 역할을 해야만 보는 이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연기적으로도, 연기 외적으로도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었다.
“극 중 주인공은 차츰 죽음으로 가는 짜증나는 세월도 참아내고 아내에 대해 헌신을 다하는 인물인데 저런 인간은 저럴 수 있다는 느낌을 줘야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혐오스럽게 보일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인물이 누구냐 생각해봤는데 안성기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되게 위험한 역할이다. 잘 해놓고도 자칫 잘못하면 관객들을 거북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추은주라는 여자한테 넋을 놓고 빠져들어가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되면 저런 얼굴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연기자의 영화에서의 삶도 있고 밖에서의 삶도 있는데 사람들에게 건실한 느낌을 주게끔 살아온 행적이 안성기에게는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역할을 소화해야 할 때는 그냥 연기자를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작품을 통해서 점검이 된 부분과 연기자 외의 밖에서의 생활에서 어떤 인상으로 비춰지고 있는지 그런 저런 것들도 포함해서 연기자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내용 역시 ‘화장’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힘이지만 극 중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들 역시 ‘화장’의 키 포인트 중 하나다. 안성기는 물론, 전라 노출로 화제를 모은 김호정 역시 ‘화장’을 통해 재조명받고 있다. 김호정에게 전라 노출을 시켜 미안했다는 임권택 감독은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 이 배우의 진가를 알아갔다고 했다.
“도무지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어떤 연기자가 그 역할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여자로서의 매력을 보여줄 수 없는 역할이고 계속 나빠지는 쪽으로만 가는 역할을 누가 한다고 나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던 중 명필름에서 김호정을 추천 했습니다. 지금은 아프지만 전에는 예뻤을 것 같은 그런 이미지가 있어야 하는데 얼굴을 보니까 그런 것이 다 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위험 부담이 큰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배우는 뭘까 궁금하더군요. 일을 해보니까 그럴만하던데요(웃음).”
중년의 남자를 단번에 유혹할 만큼 매력적인 여인은 김규리가 분했다. 매혹적이면서도 대놓고 누군가를 유혹하는 것이 아닌, 그 분위기만으로 남자를 취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역할을 김규리는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김규리 캐스팅 이유를 묻자 임권택 감독은 “춤을 추는 김규리를 봤는데 그렇게 섹시한 배우인 줄 미처 몰랐었어요”라고 답했다.
“김규리와 ‘하류 인생’을 함께 했을 땐 그렇게 섹시한 여배우로 보지 않았는데 부산영화제에서 춤을 추는데 압도적인 성적 느낌을 주더라고요. 보면서 ‘저 여배우는 누구야’ 물어봤죠. 김규리인 줄 몰랐습니다(웃음). 그런 성적인 느낌을 살려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캐스팅하게 됐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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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