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에서 신성록과 함께 악행을 저질렀던 비서와 ‘하녀들’에서 틈만 생기면 아내 몰래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고 참 철없는 허윤서가 같은 배우라는 게 매치가 될까. 아니다. 그러나 두 캐릭터 모두 배우 이이경이 연기했다.
이이경은 ‘별그대’에서는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어두운 포스를 마구 뿜었지만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하녀들’에서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능청스럽게 여자들을 상대, 그야말로 ‘가벼움’ 그 자체였다. 그만큼 이이경은 이미지 변신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배우다. 2012년 데뷔해 이제 데뷔 4년차인데 말이다. 그리고 아직 27살의 어린 나이인데도 중심을 잘 잡고 연기하는 배우인 듯하다.
다양한 이미지 변신이 가능하고 연기력도 갖춘 이이경. 그는 데뷔 후 4년 동안 쉬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증명했다. 4년 내내 한 작품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른 작품에 출연했다. 휴식기가 거의 없을 만큼 계속해서 꾸준히 연기했다. 이번에도 ‘하녀들’ 종영 후 곧바로 tvN 금요드라마 ‘초인시대’에 캐스팅됐다. 이는 방송계나 영화계에서 이이경이라는 배우를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녀들’ 조현탁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행복한 줄 알라고요. 저도 행복하다고 했어요.(웃음) 감독님이 요즘 꽃미남에 키 큰 배우들이 많은데 너니까 살아남는 거라고 하셨어요. 저는 잘생기지 않았는데 정말 잘생긴 사람들이 많아요. 그림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죠.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러운데 꽃미남들 속에서 저만의 개성으로 살아남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그 안에서 무거운 역할이든 가벼운 역할이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가능한 배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간 이이경은 ‘별그대’를 비롯해 ‘너희들은 포위됐다’, ‘트로트의 연인’, 영화 ‘일대일’ 등 대부분 무거운 분위기의 캐릭터들을 연기했기 때문에 ‘하녀들’의 허윤서와 매치가 잘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별그대’와 ‘하녀들’ 매치를 잘 못시켜요. ‘별그대’에서 맡았던 캐릭터는 워낙 이미지가 세서 그런지 제가 다른 작품에서의 연기와 매치를 잘 못시키더라고요. 대중이 두 캐릭터를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성공적이에요.(웃음)”
이이경은 ‘하녀들’을 통해 확실히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줬다. 첫 회 첫 장면부터 이이경은 상의탈의하고 동굴에서 전소민과 파격적인 애정신을 선보였다. 그러다 옷도 못 입은 채 쫓겨난 모습까지 코믹 그 자체였다. 또한 전소민과 깊은 사이면서도 또 새로운 하녀 정유미가 나타나자 그새 또 눈을 돌리는 그런 남자였다. 항상 밝고 쾌활하고 걱정 없어 보이는 허윤서, 사실 이이경과 많이 닮은 캐릭터였다.
“저와 허윤서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긍정적인 면이 닮았죠. 허윤서는 극 중 집안이 몰락하고 복수하기 위해 싸우고 갈등관계에 놓이는 인물들과 달리 그 외의 외적인 인물로 나오는데 밝고 긍정적인 면, 허당기 있는 점이 비슷해요. 저는 매사 긍정적인 편이예요. 애교도 있는 편이고요.”
이이경은 ‘하녀들’에서 애드리브도 마음껏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본을 받으면 그 상황에 맞는 애드리브들을 준비했다. ‘하녀들’에서 이이경의 마지막 신도 이이경의 애드리브로 완성한 장면이었다. 극 중 집안의 몰락 이후 1년 뒤 춘화 작가로 성장해 떼돈을 벌어 전소민을 찾아간 신에서 춘화작가답게 귀에는 붓을 껴놓고 주머니란 주머니에서 엽전을 꺼내고 상투에서도 엽전을 꺼냈다. 그 장면은 거의 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소품까지 그가 생각했다고 하니 말이다.
“대본에 붓도 없었고 엽전을 꺼낸다는 설명도 없었는데 저는 윤서답게 엽전을 꺼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일 년 후 상황이 펼쳐졌고 상황설명이 부족해 채워주고 싶은 생각에 소품팀에 부탁해서 붓하고 엽전을 준비했어요. 저는 연기할 때 애드리브를 많이 넣는 편이예요. 박철민 선배가 애드리브를 잘하시는데 준비해오는 게 많더라고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준비를 해야 해요. 대본만 봤을 때 잘 안 떠오르는데 현장에 일찍 가서 있다 보면 생각이 나요.”
이이경이 연기하면서 애드리브를 하는 이유는 그만의 분명한 연기철학이 있기 때문. 연기하는 듯한 연기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는 듯한 연기를 하고자 하는 게 연기에 대한 확고한 그의 생각이다. 시대극에서나 현대극에서나 말하듯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한다. 그런 연기가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저는 대사를 하는 것보다 말하는 듯한 느낌으로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문어체보다 구어체로 말하고 싶어서 디테일을 살리려고 해요. 그래서 이제는 좀 더 생활 속에서 감정을 보여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양아치, 비서, 살인마 같이 어두운 캐릭터를 많이 했는데 앞으로 ‘미생’이나 ‘응답하라’와 같은 생활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하녀들’은 이이경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았다. 능청스럽고 쾌활한 캐릭터, 무게감을 덜어낸 연기도 가능하다는 걸 대중에게 보여줬다.
“대중적으로 시청자분들이 제가 예전에 했던 연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저의 다양성을 보여준 것 같아서 앞으로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좋은 발판이 된 것 같습니다.”
데뷔 이래 쉼 없이 연기하며 달려온 이이경. 그러나 그냥 무작정 필모그래피를 쌓은 것이 아니라 작품마다 자신의 재능을 대중에게 확인시켜주고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제대로 된 연기력을 갖춘 한 배우를 발견한 듯하다.
“안 쉬어도 돼요. 더 쉼 없이 달리고 싶고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양성을 가지고 달리는 게 올해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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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