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고아성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어느덧 이 드라마에서 가장 강력한 갑질을 하는 장본인이 됐다.
극 중 고아성이 분한 서봄은 신데렐라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한인상(이준 분)과의 아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도 마치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봄은 한송가의 작은 사모님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적응이 무척이나 빠른 봄의 남다르고 똑똑한 갑질 덕분이었다.
지난 7일 방송분에서는 이러한 봄의 활약이 돋보였다. 봄은 그동안 자신과 기싸움을 하던 비서를 무릎꿇게 만들었다. "우리집을 흉보지 말라"고 경고하며 비서에게 반 경고, 반 협박한 것. 대대로 한송가를 모셔온 비서이지만 갑작스런 봄의 서슬퍼런 공격과 함께 자신의 목숨줄과도 같은 고용문제를 운운하자 그대로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 시점부터였다. 봄이 이 집안에서 작은 사모님으로 입지를 굳히게 된 것은 시어머니 최연희(유호정 분)도 하지 못한 비서를 무릎끓리고 난 후부터였다.
그러자 봄의 표정이 변했다. 봄은 언니 서누리(공승연 분)의 복수를 하기 위해 비서를 통해 시아버지 한정호(유준상 분)을 조종했다. 이를 부탁하는 봄의 표정은 부탁이라기보다는 지시였다. '이 정도의 충성은 보여줘야 한다'는 식의 어기지 못할 명령이었다.
봄이 완전히 이 집안에 적응하고 갑이 됐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봄은 이제 고개를 숙여야할 이들에겐 제대로 숙이고, 또 부려야 할 이들에겐 제대로 갑질을 했다. 정말 단시간 내의 변화였다.
이러한 전개는 시청자들이 쉽게 예상하던 바와는 딴판이다. 처음 수수한 모습의 봄은 인상의 집에 적응하지 못해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이후 봄이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겪을 줄로만 알았다. 인상의 동생을 제외하곤 모두가 그를 반기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갑을 풍자하겠다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상 봄의 안타까운 처지와 맞물려 이야기 전개가 될 것이라 예상됐다.
그러나 점차 이야기가 흘러가자 영 딴판이었다. 사법고시 패스 가능성을 기점으로 봄을 대하는 정호의 처우가 달라지더니, 이제는 꽤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있다. 친정 식구들이 그렇게나 사고를 쳐도 오히려 정호는 봄에 대해 "행복한 돌연변이"라고 감쌀 정도로 신뢰도 얻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봄 또한 선이 아니란 사실이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여느 드라마처럼 선과 악을 구분해 그 대결에서 얻어지는 흥미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 대신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하며, 드라마적인 흥미 보다 인간에 대한 성찰을 더 우선순위로 둔다.
봄의 경우도 그러하다. 봄이 여전히 시댁 식구들에게 당하는 을의 입장이라면 '풍문으로 들었소'는 뻔한 드라마가 될 뻔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봄의 변화를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비서에게 거만한 표정을 짓는 봄은 사실 갑질을 하고 있었다. 하루 아침에 갑이 돼 버린 을의 현실적인 변화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든 정말 자신이 원해서든 봄은 점차 그렇고 그런 갑이 되고 있다. 봄의 갑질을 마냥 통쾌한 광경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이 드라마의 진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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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