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데뷔 50년을 넘긴 ‘국민 어머니’ 김혜자의 연기에 감탄하는 일은 새삼스럽지만, 또 한 번 감탄하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명연기가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매회 반복되고 있다. 배우가 극중 맡은 인물을 표현하고 그것을 보는 이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 간단한 일은 요즘 들어 ‘발연기’, ‘핵노잼’ 등의 단어가 활발하게 쓰이면서 갈수록 쉽지 않아지고 있는데, 김혜자가 발휘하는 흡인력은 그래서 더 대단하다.
김혜자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강순옥 역으로 열연 중이다. 30년 동안 남편 없이 외롭게 산 여자. 남편의 외도와 가출, 사망 소식으로 마음에 한을 품게 된 이 여자는 고상한 외모에 거침없는 말투와 솔직한 입담으로 오묘한 매력을 발휘중이다. 특히 김혜자는 자신을 떠난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언제나 남편을 그리워하는 소녀같은 매력을 놓치지 않으며 남편의 내연녀 모란(장미희 분)을 집에 데려와 그와 함께 만들어내는 독특한 이야기로 시선을 끈다.
오랜 기간 품은 남편에 대한 애증, 그리움을 가늠해보기란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연륜이 담긴 비꼬기 기술과 할머니가 됐어도 감출 수 없는 여자의 질투 등의 장치는 이제 더는 세상에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김혜자를 통해 발현되며 공감대를 짙게 형성한다.
내연녀 모란을 만나자마자 발차기를 날려 그를 기절시키는 ‘혜자킥’부터 환하게 웃는 얼굴로 모란 앞에 이죽거리며 기어코 그에게서 눈물을 뽑는 기술, 자신이 바꿔치기한 모란의 반지를 끼고 자랑하는 유치함, 남편을 닮은 사람을 봤다는 말에 고운 옷을 차려입고 길에서 서성이다 속상함에 쏟는 눈물, 또 내연녀와 함께 목욕을 하게 될 상황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의 독설 등 김혜자가 끌고 나가는 순옥의 감정선은 익숙한 것 같지만 새로운 이야기로 시청자를 몰입하게 한다.
특히 지난 12회 방송분에서 죽은 줄 알았던 남편 철희(이순재 분)가 기억을 잃은 채 안국동 집에 찾아오자, 소금을 뿌리며 “잡귀야 물러가라”고 외치던 김혜자의 모습은 안방극장에 전율을 선사했다. 30년 만에 만난 남편 철희가 등장하자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한순간에 담아내며 혼란스러워하던 김혜자의 눈물이 가득 고인 눈망울과 숨이 넘어갈 듯 소리 지르는 모습은 남편의 외도와 가출로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순옥의 복합적인 심경이 고스란히 표현돼 화제를 낳았다.
이는 현재까지 진행된 극의 내용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이전 상황에서 쌓였던 김혜자의 모든 감정이 이 장면에서 폭발하며 시청자에 강한 울림을 안겼다. 남편과 닮은 사람이라도 보고 싶어 하던 여인이지만, 막상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을 만나자 폭발한 울분과 충격을 안방극장에 오롯이 전달한 김혜자의 명연기는 그가 왜 대배우인지 설명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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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여자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