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김규리, "가볍게 들어가 무겁게 나왔죠" [인터뷰]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4.11 07: 07

커다란 눈망울에 도자기 같은 피부, 몸의 선까지 고와 자꾸 눈길이 가는 여인이 있다. 회사 중역이자 죽어가는 아내를 곁에 둔 남자는 시선으로 이 여인을 쫓을 뿐, 그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영화 '화장'(감독 임권택, 제작 명필름) 속 오상무(안성기)와 추은주(김규리)의 관계가 그러하다.
추은주는 등장만으로 오상무의 마음에 파장을 만들어 내는 여인이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름다워야 설득력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배우 김규리의 캐스팅은 적역이었다. 청초함과 건강함을 머금은 그는 임권택 감독을 만나 생의 절정에 있는 싱그러운 여인을 완성했다. 이처럼 '화장' 속 김규리는 자체발광이라도 하듯 눈부신 아름다움을 뽐낸다.
지난 6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규리는 이 같은 칭찬에 "스태프들 덕분"이라고 답했다. '하류인생'(2004) 이후 임권택 감독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는 사실이 영광이라고 했다. "감독님이 또 불러주신다는 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추은주라는 인물이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영화 속 추은주는 관념적인 인물이다. 실제와 오상무의 상상이 뒤섞이면서 어느 순간 무엇이 진짜 추은주인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오상무와 그의 아내(김호정)이 실재하는 인물이라면, 추은주는 오상무가 욕망하는 이미지로 존재한다.
"처음엔 추은주는 오상무의 시선이라고 생각해 가볍게 생각했어요. '하류인생' 때는 감독님이 구체적으로 디렉션을 주셨고, 어머니 발인 직후라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죠. 이번엔 감독님이 많은 부분을 맡겨주셨죠. 스스로 해내야 했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이 컸고요. 가볍게 들어갔다가 무거워져서 나왔어요."
'화장'은 그에게 고민할 거리를 남겼다. 김규리는 "어떻게 해야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생각해 본 적 없다"며 "내면의 매력이 나만의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겉으로 끄집어내는 직업을 하면서 자신을 의심하게 됐다. '나는 매력적인가'라는 질문을 아직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자신감을 잃어버렸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그래서일까. 배우로서 과도기라는 그는 "다음 작품에서는 얼굴에서 화장(化粧)을 지운 역할을 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아리송한 비유에 무슨 뜻인지 되물으니 '동적인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최근 출연작에서 정적인 인물을 주로 맡았고, "나에게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운명처럼 좋은 작품을 기다려야겠다고 했다.
"2002년 MBC 드라마 '현정아 사랑해'로 안판석 감독님과 함께 한 적이 있어요. 첫 촬영을 갔는데 화장을 지우라고 하셨어요. 굉장히 놀랐지만, 그래도 화장을 지우고 맨 얼굴로 촬영을 들어갔죠. 화면에 정말 예쁘게 나오는 거예요. 자신감이 붙으니까 연기에 대한 메이크업도 지우게 됐어요.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나오더라고요. 그때 그 희열감을 다시 맛보고 싶어요."
영화 '여고괴담 2'(1999)로 각종 신인여배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다. 이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 받았다. 그럼에도 안주하고 만족하기보다 완벽을 기하고 좀더 발전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선 배우로서 사명감이 느껴졌다.
"이제는 좀 놓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어쩌겠어요. 성격이에요. (웃음) 저에겐 연기가 곧 일상이이예요. 동기를 찾아내는 가장 강력한 방법도 작품이고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화장' 이후엔 화장을 지운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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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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