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천기누설이라…”
9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t와의 경기를 앞두고 김용희 SK 감독은 하나의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끝을 흐렸다. 7일과 8일 연속으로 마운드에 오른 팀 필승조 정우람 윤길현을 이날 쉬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자칫 상대팀에 불펜 현황에 대한 고급정보(?)를 넘겨줄 수도 있어 확답은 피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불펜의 경우는 그것이 정석이다”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실제 그랬다. 9일 경기에서 정우람 윤길현은 대기조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경기 후 김 감독은 “두 선수를 오늘 투입시킬 생각은 없었다. 마무리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문광은을 올릴 생각이었다. 어쨌든 타선이 잘 쳐줘 불펜 운영이 수월했다”라고 털어놨다. 이날 SK는 13-2로 대승했고 선발 트래비스 밴와트(5이닝)에 이어 채병룡(3이닝) 고효준(1이닝)이 차례로 마운드에 올라 경기를 마무리했다.

김 감독은 ‘시스템 야구’를 추구한다. 팀에 맡는 확실한 시스템을 짜두고 그것에 따라 시즌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미 스스로의 연구, 그리고 코칭스태프나 관계자들의 조언을 집대성한 ‘시스템’이 있다. 시즌을 치러가면서 수정하고 보완할 점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흔들리지 않은 틀은 가지고 있다. 이를 테면 정말 시즌의 명운을 가를 만한 승부가 아니라면 불펜투수들의 3일 연투는 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SK를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감독 자의로 바꿀 수 없는 룰이기도 하다.
취임 당시부터 밝힌 이런 확고한 지론은 SK 불펜 사정과 맞물려 실행 여부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SK는 지난해 필승조 선수들의 줄부상 때문에 특정 선수에 대한 과부하가 심했다. 대표적인 선수들이 불펜에서만 84⅔이닝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닝을 던진 전유수, 2년 연속 70경기 이상을 던진 진해수, 중간과 마무리를 오고 간 윤길현이다. 그렇다면 김용희 체제에서의 불펜 운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등판 일지만 봐도 ‘여유’가 보인다. 칼과 같은 관리다.
김용희 감독의 철학대로, 올 시즌 SK의 개막 불펜투수라고 할 수 있는 8명 중 3일 연투를 한 선수는 아직 한 명도 없다. 이틀 연투를 한 선수들 중 총 투구수가 40개 이상이 되는 선수도 아직 없다. 문광은은 최고 33개, 정우람은 36개, 윤길현은 37개, 전유수는 29개, 채병룡은 24개였다. 지난해 불펜 사정상 1이닝도 버텨야 했던 진해수는 4번의 등판에서 모두 10개 이하의 공을 던졌다.
자칫 마구잡기 기용이 될 수 있는 롱릴리프에 대한 휴식일 배려도 드러난다. 박종훈은 28일 대구 삼성전에서 17개를 던진 뒤 3일을 쉬고 1일 문학 KIA전에 나섰다. 그리고 또 3일을 쉬고 5일 목동 넥센전에서 27개를 던졌다. 고효준은 3일 목동 넥센전에서 선발 밴와트가 조기에 무너지자 3⅓이닝 동안 83개의 공을 던졌다. 당시 80개 정도의 투구수를 예정하고 있었던 김 감독은 고효준에게 선발과 같은 5일 휴식을 줬다. 한동안 등판이 없던 채병룡은 9일 47개를 던졌다. 지금의 페이스라 이틀 정도는 휴식이 예상된다.
불펜투수들을 적게 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선수들도 휴식일 통보로 컨디션 관리가 용이해졌다. 이런 관리는 선발진도 마찬가지다. 밴와트는 첫 등판에서 90개, 두 번째 등판에서 96개를 던지며 점차 투구수를 올려가고 있다. 윤희상은 80개에서 87개, 김광현은 95개에서 101개를 던졌고 비 때문에 첫 등판이 늦었던 켈리는 101개에서 교체를 해줬다. 4월 한 달은 계속 관리를 해가며 등판시킨다는 계획이다.
김 감독이 이런 관리에 더 신경을 쓰는 이유는 올해가 예년에 비해 더 긴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이다. 144경기를 버티려면 마운드의 체력 관리가 필수라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지금 당장 조금 아픈 부분이 있더라도 무리하게 마운드 자원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인내심이 느껴진다. 여기에 SK 불펜 투수들도 무난한 페이스로 구상에 힘을 싣고 있다. 9일 현재 SK의 불펜 평균자책점은 4.59로 리그 평균(4.75)보다 낮을뿐더러 지난해(5.49)에 비해 1점 가까이 떨어졌다. 선수들의 노력이 크겠지만 관리의 힘도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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