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연기 잘하는 배우 김동욱이 또 한 번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줬다.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하녀들’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김은기 캐릭터를 통해 깊고 진한 연기로 애틋한 여운을 남겼다.
김동욱은 강한 흡입력이 있는 배우다. 얼굴은 여린 듯 하지만 확실히 중심을 잡고 자신만의 무게감을 가지고 연기하는 배우다. 그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몰입해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김동욱과 함께 가슴 아파하고 같이 울고 분노하고 웃게 한다. ‘하녀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극 중 인물들 중 김은기가 가장 불쌍했다는 반응이 있을 정도였다. ‘하녀들’ 속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릿해지기도 뭉클해지기도 했다.
“어느 인물에 감정이입을 시키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사월이나 무명이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고 어떤 인물에 더 이입이 돼 누가 더 공감 가느냐인데, 저는 인엽에 대한 사랑이 공감됐어요. 그래서 연기하면서 ‘이런 상황들에 처했을 때 이런 모습을 보이려면 어떤 생각인걸까’, ‘도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라고 은기를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김동욱은 극 중 국인엽과 일평생을 함께 하려고 혼례를 올릴 만큼 사랑했지만 외면 받고 사랑하는 여인 국인엽(정유미 분) 원수지간이 된 김은기의 다양한 감정의 기복을 표현해야 했다. 질투와 분노, 배신, 사랑 등의 감정을 깊은 내면 연기로 탁월하게 표현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연기할 때만큼은 유미라는 배우도 인엽으로서 사랑스러운 점들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극 중 극과 극의 연기를 했는데 일상생활 하면서 전혀 그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지는 않았어요. 연기해야 될 것들이 그런 감정들이고 게속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니 다운 될 때가 있긴 했죠. 그런 컨디션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일부러 밝게 생활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김동욱이 ‘하녀들’에서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건 인엽을 죽도록 사랑해야 하고 절대 자신이 악인으로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엽이를 너무 사랑해야 된다는 것과 절대 악인으로 보이면 안 된다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모든 것들이 증오와 원망, 분노 때문에 고통을 주기 위한 악인으로 보여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사실 인엽의 목표와 목적은 인엽이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고 인엽이가 은기의 마음을 모를 수 있지만 모든 연기를 할 때 인엽에 대한 사랑이 배제되면 안된다는 생각이었어요.”
김동욱은 영화 ‘후궁: 제왕의 첩’을 마치고 군입대를 하고 전역 후 ‘하녀들’에 출연, 연이어 사극을 선택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그는 ‘하녀들’로 ‘김동욱의 재발견’이라는 평을 받았다.
“전역 후 부담이 있었는데 ‘하녀들’이 작품도 좋고 부담보다는 ‘해보자’라는 생각이었어요.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봤고 배우로서 연기하면서 고민하고 만들어나갈 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연기자로서 보여줄 만한 것들이 있다고 판단했죠. 이렇게까지 작품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슬프게 사랑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김동욱은 ‘하녀들’에서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평생 한 여자 인엽만을 바라보고 그러다 그 인엽에게 냉대 받고 증오로 가득 찼지만 결국 인엽을 위해 대신 칼을 맞았다.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은기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일부 시청자들은 은기와 인엽이 다시 잘되길 바라기도 했지만 인엽 곁에는 무명(오지호 분)이 있었다.
“어느 정도 죽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어요. 이렇게 가다 보면 분명히 인엽이를 위한 극단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죽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은기와 인엽이 다시 맺어지는 건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은기가 죽는다는 대본을 받았을 때 ‘올게 왔구나’, ‘잘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김동욱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버린 은기만큼 로맨티스트가 아니라고 했다. 은기는 인엽에게 매일 다른 꽃을 선물할 정도로 로맨틱한 남자였고 인엽이 하녀가 되고는 양반이라는 신분을 포기하고 그와 도망까지 가려고 했다. 김동욱은 은기의 사랑에 혀를 내둘렀지만 그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착한 남자’였다.
“전 은기 정도는 아니에요. 그 친구만 할까요.(웃음) 대신 죽고 말 다 한거죠. 저는 연애할 때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지는 않지만 사랑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이 원치 않는 건 안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감동 받고 고마워하고 사랑을 확인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거죠.”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김동욱은 데뷔 12년차인 만큼 스태프들과의 호흡도 맞춰가며 작업하고 있다. 현장에서 분위기메이커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그들과 얘기를 나누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일을 진행한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12년차 배우로서 그들과의 호흡을 무시할 수 없다.
“촬영 처음에는 스태프들과 낯설음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족보다 더 많이 보는 사람들이예요. 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같은 작품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촬영하면서 스태프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기도 부탁하고 반대로 스태프들도 그렇게 하기도 하고요. 함께 같이 가는 거니까요.”
데뷔 12년차, 김동욱은 연기하는 것이 즐겁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김동욱은 여전히 연기가 재미있다. 참 부러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배우다.
“‘하녀들’과 같이 좋은 작품 받았을 때 희열이 느껴지고 하고 싶고 연기하면서 힘들 때도 있지만 끝나고 나면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있어요. 계속 작품 하는 게 좋아요. 매 순간들이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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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