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권-유병재, 이 아픈 시대의 '찌질美'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5.04.11 10: 51

중년 '찌질남' 박혁권과 청춘 '찌질남' 유병재가 다양한 작품을 통해 깊은 공감대를 건드리며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단순히 궁상맞아서 웃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찌질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사회환경과 그에 맞서 아무 힘도 없는 개인의 무기력함을 디테일하게 잡아낸다는 점에서, 현 시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박혁권이 인상깊은 '찌질미'를 드러낸 건 드라마 '밀회'와 '펀치', 그리고 영화 '스물'이다. 여기에서 박혁권은 모두 다른 듯하지만 같은 맥락 위에 선 인물들을 연기했다. 대학교수, 검사, 영화감독 등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엘리트지만, 꿈틀대는 욕망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능력으로 '찌질함'을 들킬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다.

'밀회'에서 그는 극중 부인 김희애의 힘으로 대학교수직을 유지하는 남편이었는데, 그래서 줄 서기와 눈치보기, 성공 기회 잡기에 혈안이 된 속물이었다. 부인의 불륜 앞에서도 자신의 체면이 더 중요한, 속 빈 상류층 남성을 그려낸 것.
'펀치'에선 찌질함이 더 본격적으로 표출됐다. 그는 극중 조재현에게 20년 충성했지만 능력자 김래원에게 오른 팔 자리를 뺏기곤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검사였다. 물론 그 수가 영리하진 못해서, 자신은 물론 조재현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웃픈' 인물이었다.
원래 타고난 건지, 뒤통수를 많이 맞아서 그렇게 된건지 몰라도 시도때도 없이 남 뒤통수 칠 궁리만 하고, 소신 없이 자기 살길만 도모하는 그의 모습은 힘을 가졌으나 양심을 가지지 못한 엘리트를 대변하는 듯했다.
'스물'에선 대놓고 웃기다.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매사 의욕이 없고 냉소적. 스무살 주인공에게 "영화감독 하지마. 우울증 걸려. 장사도 하지마. 재벌 해, 재벌."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는 희망을 볼 뻔했으나 끝내 보지 못한 기성세대의 무기력함이 잘 드러나있다.
그래도, 그런 그마저도 지금 청춘의 눈에는 멋있다. 유병재는 박혁권처럼 뭔가를 쥐어보지도 못한 채 평생 을로 살아가야할 것 같은 지금의 청춘을 대변한다.
그가 얼굴을 알린 tvN 'SNL코리아'에서 그는 연예인의 각종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을이었다. 그러면서도 젊은이 특유의 성질와 패기는 있어서 사고를 치거나 이런 저런 잔머리를 쓰고 싶지만, 결국 갑 앞에서 자동으로 고개가 숙여지는 상황이 익숙한 청춘이었다.
지난 10일 첫방송한 tvN '초인시대'는 그런 그의 포지션을 100프로 발휘한 작품이었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모두 '무기력한 청춘'을 궁지에 몰았다.
어리숙한 남자 선배한테 달라붙어 밥 사달라고 하는 여자 후배들, 조별과제는 남에게 떠넘겨버리는 학생들, 네 경력에 도움이 됐으니 보수는 주지 않겠다는 선배, 편의점 알바로 시간을 보내는 대학생의 일상이 촘촘하게 묘사됐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취업하기 위해서는 눈을 낮춰야한다고 잔소리하거나, 중동에 가보라고 뜬금없는 조언을 내놓는 대목에선 청년 실업 문제에 있어 유명무실한 정부에 대한 비판도 엿보였다.
유병재의 특성은 한없이 약한 을이지만 마냥 착하게만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 나름 '한 성격'을 갖고 있고, 비판 의식도 있지만 상황 때문에 잔뜩 움츠러들어있고, 또 여기에 점차 익숙해져가는 모습이 현재 20대를 가장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라는 불의쯤은 쉽게 눈감고, 기득권에 편입되기 위해선 어떤 '찌질한' 행동도 불사할 것 같기도 하다. 연애와 인간관계에도 서툴다.
첫 반응은 뜨겁다. ‘초인시대’는 첫 회부터 2%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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