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반댄스 1인자' 안무가 두부, 댄서를 꿈꾸는 이들에게[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5.04.12 15: 28

'헝그리 정신'. 춤을 추는 사람이라고 예외는 없다. 안무가 두부의 인생이 그랬다. 추고 싶다, 배우고 싶다라는 마음 하나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두부는 JYP엔터테인먼트 수석 댄스트레이너이자 아이돌그룹 비투비, 소년공화국 등의 안무 퍼포먼스 디렉터로 활약했다.  태양 '웨딩드레스' 백업 댄스, 장우혁 '시간이 멈춘 날', '주말밤' 안무 빛 백업 댄서를 했으며 SBS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K팝스타' 무대 연출 경력을 지녔다. 세계배틀대회 4da next level 1,2회 준우승을 차지했고, 아시아 대중춤페스티벌 퍼포먼스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국을 대표 하는 얼반댄스팀 '3D컬러'의 단장이다.
국내에서 얼반 댄스(urban dance) 1인자로 꼽힌다. 그의 댄스를 담은 유투브 영상은 전 세계 네티즌의 관심을 이끌어낸 바 있다. 1982년생인 그가 가요계의 역사를 거치며 국내 대표 안무가로 우뚝 서기까지는 결코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 어떻게 안무가의 꿈을 꾸게 됐나?
▲ 중학교 때 친구 덕에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됐다. 현재 모 대형기획사 퍼포먼스 디렉터로 활동 하고 있는 친구의 권유로 춤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카세트 테이프 음악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듀스의 '나를 돌아봐'에 맞춰 혼자서. 그냥 '춤추는 애네'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와 둘만 있었는데 어색했는지 걔가 '너도 춰 볼래?'라고 묻더라. 걔도 아무 생각 없이 안무를 가르쳐줬고, 나도 아무생각 없이 따라 했다. 근데 내가 생각보다 금방 따라했다. 이후 그 아이가 같이 춤추는 사람이 없으니 계속 접근(?)했다. 서태지, 듀스, H.O.T가 당시 큰 인기를 얻었고 춤에 대한 관심도 깊어졌다. 당시에는 무조건 라면 먹고 비디오를 느리게 보면서 안무 연습하는 삶을 살았다. 그 아이가 먼저 중학교 3때 가수가 됐다. 난 계속 춤을 췄다. 그러다가 유승준 댄스팀에 들어갔었다. 보통 가수를 보고 춤에 대한 꿈을 갖지 않나. 그런데 아니다. 가수들도 댄서들한테 배운다. 그런 면에서는 가수에 대한 좀 환상이 깨지는 것도 있다. '댄서가 더 멋있구나'란 생각을 했다.
- 춤을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을 했다고?
▲서울에 가지 않는 이상 기회 자체가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춤추는 선배들 중 불교신자가 있었는데, 그 선배 덕에 절에 행사를 간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춤을 추기 위해 서울로 간 아는 누나를 만났고, 그 누나가 우리가 춤추는 것을 보고 제의를 해 서울에 올라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압구정에 갔다. 당시 드레드 헤어를 한 사람들고 처음 보고 너무 신기했다. '이게 뭐지?'이러면서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 하며 살았다.
 -삶이 녹녹하지 않았을 텐데
▲부산에서 무작정 서울에 왔고, 당시 용돈을 받아놓은 게 있어서 130만원 정도 모았었는데, 살짝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그 돈으로 방을 구했다. 봉천동에 터를 잡았고 주유소 알바로 시급 1700원을 받을 때였다. 당시 ING라는 방송안무팀이 엄청 잘 나갔는데, 오디션을 보고 들어가게 됐다.
-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은건데 어땠나?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힘들었다. 알바를 하면서 계속 활동했다. 아무리 젊고 몸에 텐션이 있다 하더라도 잘 못 먹고 못 자고 하니 몸이 망가졌다. 몸에서 열량이 부족하다는 신호가 계속 왔다. 하루에 작은 육개장 사발면 하나 먹고 격일로 버텼다. 19살 연말에 연말 시상식에서 한 선배의 대타로 무대에 설 기회가 왔다. 근데 장염이라 15분마다 화장실을 가야했다. 그래도 '아파도 할 수 있습니다!'라며 무대에 섰다. 생활은 여전히 힘들었다. 13만원 방 안에는 버너가 하나 있었고, 겨울에는 찬물로 씻는데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부산은 겨울이라도 그렇게 많이 춥지는 않다.
-육체적으로 어떻게 버텼나?
▲당연히 힘든데 하루 일과가 너무 '빡세서' 힘들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거다. 음식점에서 서빙을 5시까지 하고, 연습실에 6시까지 가서 10시까지 춤을 췄다. 그러다가 주유소 알바를 갔다. 밥은 알바할 때 음식점에서 준 걸 먹은 게 전부였다. 힘드니까 눈물이 바로 나온다. 너무 피곤해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벌레가 기어다니는데 화, 짜증, 슬픔이 한 번에 같이 올라오더라. 그 때마다 '아 내려가고 싶다. 그만두고 싶다'란 생각을 하다 잠이 드는데, 다시 알람 듣고 아침에 일어나면 기계적으로 다시 일과를 시작한다.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 그러다가 ING에서 다른 방송안무팀인 스타시스템으로 적을 옮겼다
▲ING에 다니다가 힙합을 처음 접했다. 당시 힙합은 스타시스템이 유명했다. 다시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을 봤다. 그 때부터 또 다른 고생의 시작이었다. 스타시스템은 위계 질서가 강했다. 하루종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막내였기에 최고 7개팀, 안무를 50자리 이상 다 외우고(누군가가 빠지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대기실을 다 돌아다니며 심부름도 해야 했다. (그 많은 안무를 어떻게 외웠나?) 겁을 먹으면 외어진다. 하하. 스타시스템 3개월만에 80만원을 벌었다. 알고보니 3개월을 버틴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라. 1년 6개월을 하고 그만두게 됐다. 이후 나이트 라이브 무대에 서기로 했는데, 스스로 자괴감도 있었다.
- 이후 행보는?
▲23살때 언더그라운드 팀에 잠깐 있었고 계속 춤을 추다가 이후 우연히 기회가 돼 안무를 가르치는 클래스를 맡게 됐는데 힙합 가요 안무를 가르쳤다. 내가 25살 때다. 17살 때 프로를 시작해서 8년만에 처음 떳떳하게 돈을 벌게 됐다. 수강생이 점점 많아지고 댄스 배틀에서 상금을 타고 위치가 점점 올라가면서 25~26세에 100~150만원 이상 통장에 매달 꽂히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못 벌다가 버니까 되게 신기하더라. 
-그러다가 또 한 차례가 변화를 맞이했다고?
▲그러나다 공익에 갔는데, 27살 때 유투브에서 외국 춤꾼들의 얼반 댄스를 보고 멘붕이 왔다. 당시 우리나라 댄스는 일본의 것을 많이 따라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외국의 춤을 많이 접하지만, 당시만 해도 외국 방송에서도 춤을 볼 수 있는 것은 시상식 정도가 전부였다. 본다고 해도 아티스트 춤과 가수를 위한 춤이 따로 있다. 그런데 유투브를 통해 미국 댄서들이 어떻게 수업하는지 보게된 거다. 힙합 얼반댄스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배우고 싶다'란 열망에 가득찼다. 마침 역무실에서 미국 비자가 풀린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운명이었다. 당시 공익이 끝날 때쯤이었는데 25살 때부터 모은 돈으로 2009년에 드디어 미국에 갔다.
- 현지에서 춤을 본 소감은 어땠나?
▲영어도 모르고 미국 지리도 모르고 모든 게 처음이었다. 현재 K팝 안무는 대부분 미국 안무다. 무작정 LA에 갔고 어찌어찌해 주소만 갖고 유투브에 나온 그 학원을 찾아갔다. 중간에 민박 주인 아저씨의 도움을 받았다. 그 학원의 간판을 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14살부터 시작한 댄스 인생에서 27살에 마주한 광경이었다. 그 때 감동이 장난이 아니더라. 오후 2시였는데 수업하고 있던 사람이 태양(빅뱅) 안무가였다. 난 완전히 흥분 상태였다. 이후 3개월간 수업료를 내고 하루 5개의 강의를 들었다. 돈이 물론 풍족치 않았기에 배고플 땐 에너지 드링크로 힘을 얻었다. 체력이 고갈나도 마냥 행복하더라.
-미국에 다녀온 이후 어떻게 달라졌나? 
▲정말 난 배우고 싶단 마음 하나로 간 거였다. '다녀오면 대박겠지'란 마음 같은 건 아예 없었다. 그런데 내가 다녀오니 '처음'이라는 타이틀이 붙고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여러 기획사에서 레슨 과 안무 요청이 들어오더라. 이후 눈 감았다 뜨니 예전보다 좋은 집이 생겼고 차가 생기고 그랬다.
- 현재는 어떤가?
▲3D칼라의 단장으로 있고, 수업도 많이 하고 있다. 예전과는 또 상황이 다르다. 그래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안주하면 안된다. 지난 해와 올해가 얼반 신 자체가 완전 다르고, 잘 하는 애들도 많아졌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스트릿댄스 행사인 '월드 오브 댄스' 출전 준비를 하고 있다. 참여하는 것도 통과가 되야 하는데 그 자체가 정말 영광스러운 거다.
-유투브에서 화제가 된 '프로젝트X'는 어떤팀인가?
▲2013년에 시작한 가수 친구들과 만든 팀이다.각자 팀 활동을 하다 보면 보여 주고 싶은게 한계가 있지 않나. 우리끼지 하고 싶은춤 재미있게 해보면 어떨까? 제일 처음 멤버들 소속사 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팀은 상업적인 팀이 아니다, 라고. 그리고 평소에 친분 있거나 가치 작업 했던 친구들 위주로 캐스팅을 했다. 블락비 비범,엔소닉 재환이,투포케이 대일이,마이네임 세용이,소년공화국 민수 모든 멤버들이 각팀에서 춤을 담당 하는 친구들이다. 다들 춤에 열정적이고 다들 연습 하면서 초심을 찾았다고 한다. 연습하는 동안 좋아했다. 나도 그렇다. 멤버들이 다들 컴백 준비 해외 준비등 다들 스케줄이 다르다 보니 연습 스케줄 잡기도 쉽지 않지만 한번 모이면 쉼 없이 연습한다. 멤버 전원이 바쁘다보니 아직 다같이 회식 한번 못했다. 올해 다들 더 바빠졌지만 매일 단체 채팅방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다음 댄스 비디오도 기대 해달라.
-안무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안무 일이란 것이 갑자기 진행돼 힘든 부분도 있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가치에 비해 평가가 낮다. 그런 점이 안타깝다. 개개인의 열정과 끈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어린 친구들한테 일단 안무가를 전제로 꿈을 키운다면 '가리지 말고 배워라'란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야 총괄 디렉터를 할 수 있다. 여러가지 현실 상황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 같은 경우는 일을 버리고 모아둔 돈을 다 갖고 춤을 배우러 갔다. 물론 내가 다 맞다는 것은 아니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버려야 할 게 있다는 것이다. 도전을 해야한다. 그리고 이제는 선배들이 많이 해 놨기 때문에 조금은 환경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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