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에서 이런 케이블 채널 같은(?) 프로그램이 나올 줄이야. 욕쟁이에게 욕으로, ‘버럭대마왕’에겐 ‘버럭’으로 개구쟁이에겐 장난으로 받아치는 이 프로그램은 그 강렬함 때문에 중독성이 강했다. 과장이 없지 않다는 걸 알지만 한번 쯤 보고 싶었던 그림이 나오니 그 카타르시스가 크다.
지난 17일 오후 첫 방송된 KBS 2TV 예능프로그램 '나를 돌아봐'에서는 그간 막말을 일삼으며 주변인들을 괴롭혔던 연예인들이 자신보다 더 센 사람을 만나 역으로 당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극한직업의 세계에 들어선 연예인은 이경규, 장동민, 유세윤이었다. 이경규는 엉뚱하고 입이 거친 조영남의 매니저가 됐고, 장동민은 자신을 들었다놨다하는 ‘헬머니’ 김수미의 매니저, 유세윤은 평소 괴롭혀 왔던 친구 유상무의 매니저 겸 몸종이 됐다.
역지사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과응보가 필요했다. 이경규는 자신에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조영남을 보며 후배들을 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장동민은 개가 먹던 핫바를 던져주는 김수미의 모습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채 풀이 잔뜩 죽은 모습. 유세윤 역시 자신을 끌고 경찰서에 데리고 가고, 자는 얼굴에 물을 뿌리는 등 자신과 꼭 같이 짓궂은 장난을 하는 유상무의 행동에 스스로를 돌아봤다고 말했다.
재밌었던 것은 케이블 채널 방송에서나 나올 법한 ‘무음 욕 처리’였다. 조영남과 김수미는 ‘리얼’한 욕을 쏟아냈고 이는 무음으로 처리됐다. 실제 욕을 듣는 것은 아닐지라도 평소 다른 사람에게 욕을 잘하던 이경규, 장동민이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쩐지 통쾌한 일이었다. 방송의 콘셉트가 아니라면, 아무리 연예계 대선배라도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욕을 했겠느냐 만은 그것이 허용된 상황 자체를 보는 것은 즐거움을 줬다.
영화 ‘헬머니’가 나오고, 거친 래퍼들의 모습이 담긴 ‘언프리티 랩스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들은 점점 더 ‘리얼’해 보이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시청자들은 가식적으로 보이는 것들에 점점 더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막말과 욕이 허용된 예능이라 재미를 줬던 것은 아니다. 욕이 허용된 상황에서 그동안 강한 캐릭터로 인식됐던 이들이 더 강한 상대를 만나 가차 없이 당하는 모습이 즐거움의 핵심이었다.
이경규, 장동민, 유세윤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처량하기까지 했다. 특히 조영남의 매니저로 구박을 받으면서도 스태프에게 음료를 돌리는 이경규나 아무말 못하고 먹던 핫바를 삼키는 장동민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측은지심을 자아낼만 했다.
세고 강한 것은 언제나 중독성이 있다. 마치 MSG처럼 시청자들의 입맛을 잡는데 성공한 이 프로그램이 그 중독성을 기반으로 정규 편성에 성공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4회 분량의 파일럿으로 기획된 '나를 돌아봐'는 타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내용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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