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좋았다. 최근 방송된 의학드라마 중 최고의 성적을 낸 KBS2TV ‘굿닥터’의 제작진이 의기투합했고, 외모부터 뱀파이어 ‘의드’(의학드라마)에 걸맞은 두 주인공 안재현, 구혜선이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블러드’가 걸어온 길은 핏빛이었다. 드라마 초반부터 불어 닥친 연기력 논란이 독으로 작용, 총 20부작인 이 작품의 발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잡았다. 뱀파이어물이라는 다소 낯선 장르도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비록 중반부, 두 주인공의 ‘케미스트리’가 시청자들의 호평을 끌어냈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시청률 수치는 좀처럼 오르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난 21일 종영한 ‘블러드’에서는 21A 병동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지상(안재현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지상은 재욱(지진희 분)로부터 21A 병동의 실험 부작용을 해결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재욱은 리타(구혜선 분)까지 납치하며 도가 넘은 악행을 보였다. 결국 지상과 재욱은 마지막 대결을 펼쳤다. 싸움 끝에 지상은 쓰러졌고, 마지막으로 재욱이 지상의 심장에 대못을 박으려는 순간 가연이 나타나 대신 죽음을 맞이했다.
지상은 재욱이 충격을 받은 틈을 타 지태(김유석)가 준 약으로 재욱에게 주사 바늘을 꽃아넣었고, 동시에 재욱은 대못으로 지상의 심장을 공격했다. 재욱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은 듯 급격히 노화해 죽어갔고, 지상은 리타와 함께 해가 떠오르는 옥상에서 마지막을 보냈다. 21A 병동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피를 준 지상은 리타에에게 “이렇게 사랑할 줄 알았으면 빨리 만날 것 그랬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낸 시간이 이제 너무 아깝다. 덕분에 인간으로 살았다.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고백했고 리타는 “언젠가 나도 따라 갈 거다. 나도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다”고 대답했다.
지상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리타는 홀로 코체니아 공화국을 여행했다. 그는 거기서 현지 뱀파이어들에게 쫓기게 됐고,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 그를 구해줬다.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그는 지상이었고, ‘블러드’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맞이했다.
‘블러드’는 특별한 면을 가진 의사와 그를 사랑하게 된 여자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굿닥터’와 매우 흡사한 면을 갖고 있다. 주인공이 활동을 하는 병동에서 일어나는 여러 환자들의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두 드라마의 차이를 만든 것은 장르였다. ‘굿닥터’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주인공 의사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휴머니즘이 강조됐다. 때문에 다소 따뜻하고 밝은 톤의 그림이 나왔고 ‘동화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굿닥터’ 특유의 따뜻한 감성은 많은 호평을 받았다.
반면 ‘블러드’는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한 뱀파이어물이라는 장르를 다뤘다. 주인공이 뱀파이어이고, 그의 적 역시 뱀파이어로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상황이 뱀파이어의 세계 속에서 다뤄졌다. 걸핏하면 사람이 죽어 나가고 VBT-01이라는 바이러스로 뱀파이어처럼 변해가는 환자들의 모습은 극적이었다. 이는, 그야말로 판타지였고 아직까지 뱀파이어의 세계가 낯선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오글거릴’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블러드’가 해외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장기간 많이 본 영상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이 같은 면에서 볼 때 시사점이 큰 부분.
결정적으로 ‘블러드’의 시청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초반 불거진 두 주인공의 연기력 논란이었다. 논란에 비해 두 주인공의 연기는 갈수록 안정세를 찾아갔고, 특별히 알콩달콩한 멜로에서 빛을 발했지만 한번 부각된 이미지는 좀처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최고시청률은 3회가 기록한 6.0%. 이는 동시간대 방송된 드라마들이 기록하는 시청률의 반을 조금 웃도는 수치다.
‘굿닥터’의 박재범 작가와 기민수 작가가 만든 또 한 편의 의학드라마 ‘블러드’는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시청자의 곁을 떠나게 됐다. ‘굿닥터’ 같은 ‘대박작’이 나오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아주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은 장르물인 이 드라마를 끝까지 지지했던 일부 시청자 층이 존재한 덕분이다.
eujenej@osen.co.kr
‘블러드’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