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2’ 올킬 앞두고 극장 ‘쾌변’ 한국 영화 ‘변비’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4.22 07: 23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기자님 정말 이런 일도 벌어지는 군요.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지난 20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김혜수 김고은 주연 ‘차이나타운’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만난 영화인들의 인사말과 화제는 단연 ‘어벤져스2’로 집중됐다. ‘장수상회’가 아쉽게 됐다며 혀를 차는 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어벤져스2’가 앞으로 얼마나 거대한 흥행 쓰나미를 몰고 올 지와 그 파급 효과를 예측하는 이들의 발언에만 사람들의 이목이 몰렸다.
 다들 어느 정도 흥행을 예상했지만 이 정도 쏠림 현상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는 반응과 놀라움이었다. 1000만은 당연지사이고 이러다가 1500만도 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개봉작의 인지도와 호감도 지표인 예매율 역시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드는 수준이다.

 ‘어벤져스2’는 개봉을 이틀 앞둔 21일 오전 93%라는 경이로운 예매율을 기록했다. 벌써 60만명이 얼리어답터를 자청했고, 예매된 매출액도 60억을 넘어섰다. ‘분노의 질주’를 비롯해 나머지 경쟁작 중 예매율 1%를 넘긴 영화는 한 편도 없는 냉정한 현실. 이쯤 되면 예매율 싹쓸이, 올킬이다.
 CJ와 롯데, 쇼박스 배급팀은 두 달 전부터 ‘어벤져스2’ 상영일 기준으로 앞뒤 2주간 자사 영화 배치를 사실상 포기하며 이 영화와의 경쟁을 피했다. 괜히 붙었다가 피 볼 일 있느냐는 36계 줄행랑 전술이다. 극장가에 CJ 등 한국 대기업들이 ‘어벤져스2’ 직배사인 월트디즈니에 생일상을 근사하게 차려줬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어벤져스2’와 같은 날 개봉하는, 그래서 용감하거나 혹은 무모하다는 말을 듣는 한국 영화는 ‘약장수’가 유일하다. 김인권 주연 ‘약장수’는 총제작비 10억 미만인 저예산 영화로 중소 규모인 나이너스가 배급을 맡았다. 바로 다음 주인 4월 29일 선보이는 ‘차이나타운’ 역시 저예산 영화로 이 방면 전문가인 CGV아트하우스가 투자 배급하는 범죄 드라마다.
 워낙 센 외화를 새 경쟁자로 맞게 된 ‘스물’ ‘장수상회’도 유통기한이 다 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스물’의 배급사 NEW의 한 임원은 21일 “그래도 우리는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장수상회는 그렇지 못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강제규 감독의 컴백이 시장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한 것에 대한 위로였지만 냉소로도 읽혔다.
 관심을 모으는 건 ‘약장수’ 쪽 반응. 제작사 26컴퍼니의 한 관계자는 “이미 저희 손을 떠나 관객의 결정을 기다리는 영화가 됐지만 요즘 수면 유도제를 복용할 만큼 가슴 졸이고 쓰린 날의 연속”이라며 씁쓸해 했다. 보름 전부터 예매를 받아준 ‘어벤져스2’와 달리 CGV와 롯데시네마가 ‘약장수’에는 20일이 돼서야 선심 쓰듯 예매를 열어준 게 박탈감과 불면의 이유였다.
 이 추세라면 ‘어벤져스2’가 개봉 첫 주말 국내 최초로 전국 2000개가 넘는 상영관을 차지할지 모르는데 나머지 영화들은 사실상 알아서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는 불만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예컨대 10개의 스크린이 있는 CGV에서 ‘어벤져스2’가 8개관을 차지하면 나머지 2개관에서 나머지 8~9편의 영화가 박 터지게 나눠먹어야 하는데 이게 과연 정상적인 유통 구조냐는 하소연이 벌써부터 나온다.
 이번엔 교차 상영을 뜻하는 퐁당퐁당은 고사하고, 관 싸움이 아닌 타임 싸움으로 전개될 게 명약관화하다며 한숨을 내쉬는 상황이다. 익명을 원한 ‘차이나타운’의 제작사 관계자 역시 “극장이 손님 몰리는 영화에 관대한 건 시장 논리상 자명한 이치이지만, 작은 영화의 상영 관람권까지는 박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 초 멀티플렉스와 인디 영화 사이에서 벌어진 ‘개훔방’ 사태가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99개를 가진 사람이 하나 가진 이의 그것마저 빼앗아 100개를 채우겠다는 생각은 흥부 보다 놀부에 가까운 심보이고 탐욕이다. 마포대교와 상암동 등 국내 배경이 30%나 나온다는 ‘어벤져스2’를 바라보는 한국 영화인들의 표정이 썩 밝지 않은 건 그들의 물량 공세와 얄미울 정도로 지능적인 로컬 마케팅 전략, 그로 인한 싹쓸이 대박이 부럽기도 하지만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어도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없는 유통구조의 모순과 불안함이 더 크고 간절하게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일부러 센 영화와 붙어 잔여 표를 공략하던 이삭줍기 시절이 있었지만, 시시각각 영화를 파일로 전송 분배하는 멀티플렉스 시대에선 이마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삭이라도 주울 수 있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약장수’ 제작진의 푸념이 괜한 엄살로 느껴지지 않아 더욱 살벌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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