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오늘(23일) 무려 10살 생일을 맞았다. 돌이켜보면 이 프로그램은 언제나 사과의 연속이었다. 2005년 4월 23일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였던 ‘무모한 도전’으로 첫 방송을 한 ‘무한도전’은 큰 인기만큼이나 크고 작은 실수로 고개를 숙여야하는 일이 잦았다. 시청자들과 열린 자세로 소통한다는 의미이자, 그만큼 높은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방증이었다.
예상하지 못해 발생하는 실수에 대해 이 프로그램은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잘못을 저질러도 은근슬쩍 넘어가는 우리 주변 혹은 ‘높은 곳에 있는’ 이들과 달랐다. 사회지도층이 하지 않는 사과를 ‘무한도전’이 거듭했다. 소위 말하는 거물들의 부족한 책임의식에 분노하는 시청자들을 달랬다. 작은 실수의 경우 예능프로그램답게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장난스럽지 않게 접근하며 재미도 선사했다.
# 사과의 시작은 ‘욕받이’ 정준하
제작진이나 출연자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방송을 통해 사과하는 일은 오래된 역사는 아니다. 인터넷이 여론 형성 공간이 되면서 부정적인 의견이 즉각적으로 눈에 띄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부터다. ‘무한도전’의 사실상 첫 번째 공식적인 사과는 정준하가 2008년 6월 21일 방송된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촬영 중 기차 안에서 소란을 끼쳤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제작진은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제작진은 “지난 '무한도전-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특집에서 가장 모자란 놈은 저희 제작진이었던 것 같습니다”라며 “연기자들이 상황에 몰두해 주위에 신경을 미쳐 못 쓰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더욱 친절하게 승객 한분 한분께 양해를 구하고 협조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해야 했는데, 저희가 많이 부족했습니다”라고 공손한 사과를 했다. 제작진은 사과와 함께 앞으로의 제작 과정에서 신중을 기하겠다고 다짐했다.
# 예능답게 재치 있게, 두 마리 토끼 잡은 사과
두 번째 공식 사과 역시 정준하에게서 시작됐다. 2009년 11월 28일 방송에서 이뤄졌다. 일주일 전 정준하가 뉴욕 특집에서 김치전을 만들다가 한 셰프와 갈등을 빚었고 무례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뉴욕 특집 마지막 편이 방송됐던 11월 28일 제작진은 비틀즈로 변신한 멤버들이 일명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부르는 모습을 공개했다. 진행자가 고개를 숙이거나 자막을 통해 사과를 했던 엄숙했던 당시 분위기를 깨부수는 혁신적인 사과였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멤버들이 부르는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촌철살인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쩌리짱 국민호감 되더니 요리하다 무리수로 게시판 도배, 속상했다”, “잘해보려 했는데 진심으로 후회한다. 잘할게요 쩌리짱”, “마흔살에 대들다가 욕먹은 쩌리짱, 진심으로 호소하는 말 미안하다. 김치전 맛있을 줄 알았지”라는 재치 넘치는 사과 내용이 담겼다. 논란이 불거진 문제에 대해 예능으로 승화한 이 사과는 ‘무한도전’ 팬들 사이에서 ‘레전드 편’이라고 불린다.
제작진은 어느 정도 실수로 넘길 수 있는 문제의 경우 재미를 가미해 노래로 사과를 했다. 이 같은 노래를 개사해 하는 사과는 지난 해 10월 18일에도 있었다. 일주일 전 400회 특집에서 ‘무한도전’은 검은 화면과 일부 장면이 끊기는 방송사고를 냈다.
유재석은 태양의 ‘눈 코 입’을 개사해 근육 모양이 그려진 옷을 입고 사과 노래를 불렀다. 유재석은 "미안해 미안해 정말 식겁했잖아. 마지막으로 한번만 용서해. 실수한건 모두 잊어줘. 우리 정신차릴게. 더 열심히 할게. 다시는 이런 깜놀(깜짝 놀라다) 할 일 생기지 않게. 혹시 이런 나 때문에 깜놀했니. 아무 질책 없는 너. 바보처럼 왜 나를 혼내지 못해. 작은 댓글까지 다. 여전히 난 느낄 수 있지만. 꺼진 TV처럼 타들어 가버린 우리 마음 모두 다. 너무 아프지만 이젠 더 좋은 방송 만들게"라는 내용을 담았다.
#커진 영향력, 사과의 질과 양이 다른 ‘무한도전’
일명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을 들끓게 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진지하게 사과했다. ‘무한도전’은 MBC노조의 파업 기간 중 멤버들이 중심으로 준비한 콘서트 ‘슈퍼7’ 티켓 가격이 높게 책정됐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이에 멤버들은 콘서트를 취소하고 사과에 이르렀다.
당시 방송은 파업으로 인해 중단된 상태. 멤버들은 길의 소속사인 리쌍컴퍼니를 통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멤버들은 "공연의 질에만 집중한 탓에 정작 더 크고 중요한 것들을 돌아보지 못한 것 같다"면서 "고심 끝에 시청자 여러분을 불편하게 만드는 공연은 더 진행하지 않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지켜봐 주신 많은 분과 직접 만나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을 모아 콘서트를 계획했지만, 경험 부족이 초래한 여러 상황 때문에 많은 분을 혼란스럽게 해 드린 것 같다"면서 "공연을 기다려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2014년 4월 길이 음주운전으로 하차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재석은 5월 3일 방송에서 길의 음주운전 물의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이때부터 유재석은 제작진과 출연진을 대표해 때마다 사과를 하며 ‘사과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한도전’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다하는 ‘대리 사과’였다.
유재석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길 씨가 하차하게 됐다"면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제작진과 모두가 책임이 있는 일이다"고 사과했다. 또한 그는 "'무한도전'을 아껴주시는 시청자 여러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면서 "우리 모두가 방송 외적인 생활도 조심하겠다. 길 씨도 자숙의 시간을 갖고 뼈저리게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을 것이다"고 멤버들의 철저한 사생활 관리를 약속했다. 유재석은 "우리가 더욱 노력을 하겠다. 더욱 열심히 하겠다. 죄송하다"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 언젠가부터 익숙해진 ‘사과맨’ 유재석
사회적인 물의까지는 아니었지만 왜곡된 시선으로 제작에 임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4년 6월 1일 ‘무한도전’은 노홍철의 짝을 찾아주기 위한 특집인 '홍철아 장가가자'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인해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고 유쾌하면서도 진심 있는 사과를 전한 것. 유재석이 차세대 리더로 선출된 가운데, 잘못을 저지르면 곤장을 맞겠다는 공약 이행이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대표해 "예능의 기본은 웃음을 드리는 것이다. 불편함을 드려서 죄송하다. 리더인 내가 책임을 져야겠다. 내가 먼저 곤장을 맞겠다"고 사과한 후 곤장을 맞았다. 엉덩이에 곤장이 닿았을 때 나는 찰진 소리와 함께 녹화 시간 30분 지각을 한 하하도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일명 곤장 맞는 사과였다.
이어 김태호 PD도 제작진을 대표해 곤장을 맞았다.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자막은 왜 이 프로그램이 지난 9년간 시청자들에게 지독한 사랑을 받아왔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발빠른 사과는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불편한 감정이 아닌 웃음을 선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담겨 있었다. '국민 예능'으로서의 남다른 책임감을 가지고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 것. 치루 재발로 인해 곤장을 맞을 수 없었지만 소개팅 당사자였던 노홍철은 "피고름을 보여줄 수 있는 내가 맞겠다"고 나선 후 멤버들의 만류에 깊은 사과를 했다.
지난 10년간 가장 뼈아픈 사건이 있었다. 바로 9년간 함께 한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됐고, 하차하게 된 것. 길에 비해 ‘무한도전’ 내 역할이 컸던 노홍철의 실수와 하차는 ‘무한도전’에게 그야말로 위기를 불러왔다. 그리고 여전히 후유증이 남아 있다.
2014년 11월 15일 이날 멤버들은 길에 이어 노홍철까지 같은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를 전했다. 대중에게 신뢰감이 두터운 리더 유재석이 가운데에 섰다. 그는 "또 다시 불미스러운 일로 인사드리게 돼 면목이 없다. 올해 4월 길 씨가 똑같은 일로 죄송하다고 사과드렸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일로 사과드리게 돼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노홍철도 이번 일로 많이 깊이 반성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덧붙여 "그래도 매주 큰 웃음 드릴 수 있도록 마음 모아서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멤버들은 다함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등을 집필하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한 일갈을 하며 상대 국가에 대한 사과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했다. ‘무한도전’의 사과 역시 그렇다. 누군가는 작은 흠집도 이제는 사과를 하고 넘어가야 할 만큼 일을 키웠다고 하나, 이들의 발빠른 사과는 시청자들이 언제나 ‘무한도전’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이들이 언제나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영양분이 된다. 든든한 시청자가 있다는 것은 그 어떤 ‘빽’보다 강력하다. 즉각적인 반응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언제나 신중을 기하겠다는 이들의 제작 기조가 ‘무한도전’ 10년 방송의 원동력 중 하나다.
jmpyo@osen.co.kr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