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인심 좋은 할아버지, 푸근한 할아버지였던 이순재가 이토록 얄미워 보이다니. 어쩜 이리 뻔뻔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힐 정도다.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갑자기 가장노릇하면서 가족들을 괴롭히는가 하면 기억이 돌아왔으면서도 장미희를 모른 척 하는 모습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다.
이순재는 tvN ‘꽃보다 할배’에서도 맏형으로서 동생들을 챙기고 박식하고 열심히 관광하는 등 따뜻한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이런 이미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KBS 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극본 김인경, 연출 유현기 한상우)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불륜에 도피까지 하고 가족들에게는 트러블 메이커로 속 썩이는 ‘문제적 할배’다. 지난 22일 방송된 17회분에서도 이순재의 얄미운 행동은 이어졌다. 철희(이순재 분)의 기억은 돌아온 상태다. 기억이 완전히 돌아온 철희는 가족들에게 가장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철희는 가족들과 식사하던 중 큰딸 현정(도지원 분)이 독립한 것에 아내 순옥(김혜자 분)을 다그쳤다. 또한 현숙(채시라 분)이 19살에 마리(이하나 분)을 낳고 남편 정구민(박혁권 분)과 별거 중이라는 사실에 화를 냈다. 30년 동안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철희와 가족이 만났고 철희 본인도 당황스럽지만 가족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그런 철희가 갑자기 식구들을 신경 쓰고 혼내는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이에 순옥은 “지금 30년 동안 있었던 일을 따지는 거냐”고 한 마디 했고 철희는 “콩가루 집안이구만. 콩가루 다 됐어”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순옥은 철희의 반응이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결국 순옥은 “콩가루 만든 건 당신이다”고 쏘아 붙였다.
그런데 또 철희는 현숙을 어린 나이에 임신시킨 구민(박혁권 분)을 혼내고는 벌을 세웠고 마리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것 등에 대해 벌을 세웠다. 이뿐 아니라 현정의 집까지 찾아가서는 문학(손창민 분)과 함께 있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또한 새벽에 일어나 호루라기로 가족들의 잠까지 깨우기까지 했다. 거기다 구민에게 용돈을 받고는 순옥과 데이트를 하는 것 같더니 버럭 소리를 지르는 등 30년 만에 만난 남편치고는 하는 행동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척 하고 모란(장미희 분)이 묻는 약혼녀 얘기에 정색을 하며 모른다고 했다. 30년 전 아내와 자식까지 버리고 모란에게 청혼했으면서 이제와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괘씸하기만 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괘씸함과 얄미운 마음이 들게 하는 이순재.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깔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꽤 있다. 묵직한 것보다 때론 떼를 쓰기도 하고 순옥에게 “한방 쓰자”고 뜬금없이 말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해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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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