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죽은 ‘약장수’ 이래서 약이나 제대로 팔 수 있을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4.24 13: 39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카톡 카톡 카톡’ 23일 저녁 누군가 단체 카톡방에 초대해 들어가 보니 배우 박철민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허락도 없이 초대해서. 그냥 제 글 한번 읽어봐 주시고 답도 달지 말고 그냥 퇴장해주세요. 간절한 마음에 이렇게라도 글을 남깁니다.’
그의 카톡 메시지의 요지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약장수’가 개봉했는데 주위에 널리 알려 입소문을 내달라는 호소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박철민과 김인권 이주실이 호흡을 맞춘 ‘약장수’는 2500억이 소요된 ‘어벤져스2’와 같은 날 개봉을 감행해 영화계에서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모르겠다는 평을 듣는 부성애 코드를 다룬 휴먼 드라마다.
 순제작비 4억5000만원에 버스 광고조차 집행할 수 없었던, 허리띠 바짝 졸라 맨 영화치고 배우들의 호연과 독거노인 고독사 등 울컥한 코드와 사회적 문제제기가 담겨 있어 언론 배급 시사회에서 호평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이 영화의 흥행을 자신 있게 예측한 이는 거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영화 유통의 ABC도 모르는 초보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약장수’가 ‘어벤져스2’와 붙기로 한 건 이들이 영화 배급에 문외한이거나 카지노 마인드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 영화의 배급사 나이너스는 한때 '집으로' 등을 만들며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끈 튜브 출신 김승범 대표가 사령탑으로 있는 곳이다. 이들의 전략은 아마 ‘어벤져스2’로 모처럼 극장이 붐비게 된다면 ‘약장수’도 콘텐츠의 힘으로 손익분기점인 2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지 않겠냐는 낙관론이 작용했던 것 같다. 때가 때인 만큼 스크린을 양껏 확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도 조금은 희망의 끈이 있지 않을까’ 싶었을 게다.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이런 기대와 낙관은 ‘약장수’의 순진한 발상으로 판명 날 듯싶다. 개봉 전 예매 단계부터 패색이 짙게 드리웠기 때문이다. 보름 전부터 예매를 열어준 ‘어벤져스2’와 달리 CGV를 비롯한 멀티플렉스들이 합심이라도 한 듯 ‘약장수’에게는 개봉을 코앞에 둔 20일에야 겨우 예매를 받아준 것이다.
 물론 예매 수요가 절대적으로 열세이고 ‘어벤져스2’에 비해 체급이 한참 부족하다는 걸 ‘약장수’ 제작진도 잘 알고 있다. 주제 파악, 현실 인식도 못 하면서 잘 되고 있는 남 탓만 하는 퇴행 현상을 보이고 있는 집단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엔트리 명단에 들었는데 갑자기 경기에 출전을 못 하거나, 반칙도 안 했는데 퇴장 명령에 가까운 심판의 호각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격한 자괴감과 낭패감이 들까.
 이런 ‘약장수’에 돈을 댄 곳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100억을 번 대명문화공장과 문화 다양성 펀드를 주로 운영해 온 창투사 캐피탈원이다. 캐피탈원은 정부 자금인 모태 펀드를 기초로 투자배급사 NEW의 돈줄을 바탕으로 지금껏 10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에 관심을 가져온 곳이다.
 하지만 최근 NEW가 자회사인 부가 판권 회사 판다를 설립하면서 독자 노선을 선언, 사실상 다양성 펀드의 존립이 위기를 맞았다. 펀드 해산 시기는 아직 1년이 더 남았지만 든든한 파트너가 발을 빼는 형국인 만큼, 캐피탈원의 영향력 역시 지금보다 기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투자배급사 NEW의 돈이 들어간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는 개봉 시 스크린 확보를 위한 극장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게 돼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계에선 ‘약장수’가 유통망의 힘의 논리에서 밀리는 것도 마음 아프지만, 다양성 펀드가 이 참에 쪼그라드는 건 아닌지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규모 있는 제작사야 인맥과 기획력으로 버티겠지만, 저예산 영화를 준비하는 프로듀서 한 두 명이 유지하는 독립군 영화사들은 캐피탈원이나 산수벤처 등 그나마 믿었던 언덕들이 흔들려 지원 기회마저 박탈당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워낭소리’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사례처럼 아무리 예산이 작고 중소배급사가 유통해도 콘텐츠의 힘만으로 얼마든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박 케이스는 연례행사에 가까울 만큼 다크호스 성격이 강한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얼마짜리, 어느 배급사 작품인지를 따지는 스펙과 꼬리표에 집착할 게 아니라 남들이 안 하거나 시도하지 못 하는 콘텐츠로 관객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영화계에 안착되길 기대해본다. 이 모든 건 CGV 같은 멀티플렉스들의 동참과 페어플레이 정신이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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