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지난 10년간 하나의 생명체처럼 성장했다. 일정한 틀이 없는 무형식에서 형식을 만들어가며 안방극장을 어지간히 울리고 웃겼다. 예능프로그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특집도 많았고, 이들의 발걸음이 한국 예능 발전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2005년 4월 23일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로 조용히 출발했다. 2015년 4월 현재 한국 예능 중 가장 높은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올랐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노력에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지지가 뒤엉켜 ‘문화 대통령’이 됐다.
비단 꽃길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재미가 없어 ‘망한’ 특집이 있기도 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성공적인 특집이 쏟아지기도 했다. 방송 당시 위기라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로 문제가 됐다. 누군가는 초심을 잃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기의 성과가 있는 특집이기도, 아니면 지금 생각해도 꽤 문제가 있었던 특집이기도 했던 흑역사의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무한도전’이 존재한다.
28분 만에 끝난 좀비 특집 ‘28년 후’
2008년 8월 2일 지금도 회자되는 좀비 특집이 방송됐다. 제작진이 자막에 넣었듯이 이 특집은 야심찬 기획이었다. 준비 기간만 두 달, 당시 2회 이상을 촬영할 수 있는 제작비 투입, 카메라 48대, 보조 출연자를 비롯한 동원된 인원 400여명으로 소문난 잔치를 벌이려고 했다.
좀비들이 점령한 비극의 도시에 버려져 생존을 위한 게임을 한다는 설정은 무참하게 깨져버렸다. 바로 백신 병이 허무하게 깨지면서 이 같은 대형 특집은 28분 만에 끝이 났다. 대본 없이 즉흥 상황에 기대는 ‘무한도전’의 묘미가 최대화된 지점이었다. 2008년은 아직 방송 초기라 이 같은 무모한 실험 정신은 많은 이들을 허무하게 했나보다. 두고 두고 최악의 특집으로 꼽히고 있다.
다만 당시 제작진이 잘못 한 게 없는데 사과 방송을 하는 재밌는 구성으로 망한 특집도 활용하는 기술이 인상적이었다. 특집은 기대 이하의 재미를 줬지만 이를 포장해 안방극장에 전달하는 편집이 실험적이면서도 재치가 있었다. 제작진은 “녹화에 참여한 외부업체 일부는 상심한 제작진을 위로하며 철야제작비를 삭감해줬다”면서 “어느 납량특집보다도 더욱 간이 콩알 만해진 무한도전 제작진은 지금 경위서 작성 중”이라는 글로 시청자들을 웃겼다. 스스로 최악의 특집이라 명했지만, 이 프로그램의 실험 정신이 돋보인 구성이었다.
곤장까지 맞았던 ‘홍철아 장가가자’
2014년 5월 24일 당시 유일한 총각 멤버였던 노홍철의 짝을 찾아주겠다고 ‘무한도전’이 소매를 걷어올렸다. 유부남 멤버들은 서울 곳곳을 누비며 노홍철의 소개팅 상대자를 찾기 위해 물색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방송에 표출됐다는 것.
사적인 자리에서 남성들이 주고받는 농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면서 논란이 일었다. 기획의 진정성과 재미는 시청자들에게 전달됐지만 일부 멤버들의 솔직함이 지나쳤던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결국 제작진과 출연진은 사과와 함께 2탄을 방송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이들은 방송을 통해 사과를 하는 동시에 곤장을 맞았다. 일주일 전 국민투표를 통해 차세대 리더로 선정이 된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대표해 "예능의 기본은 웃음을 드리는 것이다. 불편함을 드려서 죄송하다. 리더인 내가 책임을 져야겠다. 내가 먼저 곤장을 맞겠다"고 사과했다. 꽤나 시끄러웠던 잡음이 발생했지만 기민하면서도 예능프로그램다운 진솔한 사과는 성난 시청자들을 돌려세웠다.
도대체 인도는 왜 갔을까
2008년 2월 23일은 좀비 특집과 함께 ‘무한도전’의 대표적인 흑역사였던 인도 특집이 처음으로 방송된 날짜였다. 6일간의 인도 여정을 담았던 인도 특집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이유로 시작됐다.
멤버들이 인도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은 외국문화 비하 논란으로 번졌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거창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명상을 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웃음도 감동도 없었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미 정상의 위치였던 이 프로그램은 2008년 색다를 시도를 많이 했는데 그래서 흑역사가 많았다. 당시 ‘무한도전’은 시청률 20%를 넘겼을 때였다. 다만 인도 특집 이후 시청률이 연이어 하락하며 이 같은 부정적인 여론은 극에 달했다.
‘무한도전’이 움직일 때마다 의미를 부여하던 초기라 조금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비난을 사는 억울한 일들이 벌어졌다.
소녀시대가 출연해도 재미 없었다?
‘무한도전’은 때마다 사회 현실을 되짚거나 공익적인 가치를 실현했다. 2009년 3월 7일 방송된 여성의 날 특집도 그랬다. 소녀시대와 함께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했다. 멤버들과 소녀시대는 짝을 이뤄 길거리로 나섰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다이어트, 사랑, 관심이었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원하는 게 이 세 가지였다. 시청자들은 도대체 왜 이 특집을 준비했느냐고 반문했다. 소녀시대와 멤버들의 융합이 이뤄지지 않았고, 거리에서 여성들의 고민을 듣는 것은 의미와 재미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이 특집은 ‘28년 후’, 인도 특집과 함께 2010년 6월 5일 방송된 200회 특집에서 ‘무한도전’ 최악의 특집으로 꼽혔다.
새 멤버에 대한 거부감, 식스맨이 최악?
6주에 걸친 새 멤버 선발 과정은 지난 18일 끝났다. 제국의 아이들 멤버 광희가 ‘무한도전’의 새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이른바 ‘식스맨 프로젝트’다. 10년간 함께 한 멤버들 사이로 새로운 얼굴이 들이민다는 것은 과감한 실험이자 어떻게 보면 무리수이기도 하다.
6주 동안 어지간히 시끄러웠다. 장동민이 내정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인터넷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식스맨 특집 자체가 전 멤버였던 노홍철의 복귀를 위한 초석이 아니냐는 불신도 있었다. 과거 여성 비하 발언을 했던 장동민은 심지어 막판에 식스맨 후보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하며 사과를 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식스맨 선발 과정이 여실히 드러냈다. 광희는 새 멤버로 합류하게 됐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이 특집을 10년 방송 중 최악의 특집으로 꼽는다. 새 멤버 자체가 싫다는 거부감 때문이다. 새로운 원동력이 필요하고, 지금의 5인 체제는 여러 특집을 진행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제작진의 설명에도 말이다.
‘무한도전’은 25일 10주년 생일을 맞아 특집 방송을 한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새로운 특집을 끊임 없이 구상하는 프로그램이라 최악과 최고의 특집이 나올 수 있다. 시청자들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리고, 늘 시청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터라 성장이 가능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시청자들이 꼽는 ‘무한도전’의 진짜 흑역사는 따로 있을 수도 있다. 제작진이 큰 뜻을 품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제작 일선에서 벗어났던 파업의 시기, 안방극장은 ‘무한도전’을 5개월여 동안 보지 못했다. 2012년 늦겨울부터 초여름까지 기나긴 웃음기 없는 어둠의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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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