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벌써 10년 '무한도전' 무엇이 남들과 달랐을까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5.04.26 07: 25

[OSEN=이혜린의 스타라떼]지난 25일 MBC '무한도전'이 지난 10년을 반추하던 10주년 특집 방송은 '무한도전'이 애초에 어떤 차별화된 매력을 가졌는지 새삼 실감케 하는 기회가 됐다.
10년 넘게 장수한 프로그램이 아주 없진 않지만, 하나의 예능프로그램이 멤버와 포맷을 상당부분 유지하면서 10년을 '버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 더욱 놀라운 건 이 프로그램이 10년째 '핫'하다는 것이다. 시청률과 관계 없이, 멤버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를 모으고 사소한 논란 하나도 폭발적인 이슈로 증폭되는 '핫'함으로는 지난 10년간 3위권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을 것이다.
10년 전 '무한도전'이 가장 달랐던 점은 출연자들이 모두 '나' 같았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이 시작된 2005년은 삼포세대, 히키코모리, 루저 등의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시기였다. 취업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학교, 직장 할 것 없이 경쟁구도가 극으로 치닫을 즈음, 그래서 '잘난' 사람들에 대한 염증이 꽤나 심해질 때쯤 이 프로그램은 '평균 이하' 멤버들의 무모한 도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스타트를 끊었다.

그냥 달리기도 못할 것 같은 멤버들이 지하철과 속도 경쟁을 하거나, 별 이유도 없이 연탄을 쉴새 없이 나르며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은 단순히 '웃기기'만 하지 않았다. 수시로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망연자실한 멤버들의 모습엔 지난 한주 개고생한 '나'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무한도전'이 고생을 많이 하는 특집일수록 호응이 높았던 것도 그 이유 아니었을까.
다른 채널을 수놓고 있는 완벽한 연예인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이들이 자기들끼리 외모 서열을 매기고, 어쩌다 톱스타라도 보면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는 모습 역시 남 같지 않았다.
그렇게 '무한도전'은 매주 토요일 약속도 없는 주말 저녁, 잘난 사람들에게 치인 '우리'끼리 맘껏 떠들고 노는 시간이었다. '우리만의 리그'를 만드는 재미도 있었다. 멤버들이 유독 다른 프로그램에서 쓰지 않는 특이한 별명을 짓고 신조어를 만들어내던 것은 '우리만의 룰'을 만드는 과정 같았다. 멤버와 시청자의 관계는 더 쫀득해졌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재미가 없어도 용서가 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리 저리 노력해도 끝내 지루하게 끝나버리는 특집 역시, 이 '모자란' 친구들이 도전해가는 여정 중 하나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도전에는 무의미한 과정이 없다는 것, '무한도전'이 나름의 슬럼프를 겪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무한도전'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중에서도 캐릭터 플레이에 가장 능하기도 했다. 놀기 좋아하는 모범생 1인자 유재석, 모두에게 함부로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아버지 2인자 박명수, 칭얼대는 먹방 주자 정준하, 의외의 순간에 독특한 센스를 발휘하는 정형돈, 시끄러운 '똘아이' 노홍철, 무식한 막내 하하로 캐릭터가 굳어지면서 한편의 잘짜인 시트콤 같은 호흡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상황을 던져놔도 '상황극'이 발생하는 각 멤버간 '케미'는 이 프로그램의 팬덤이 유독 아이돌 팬덤과 닮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시청자들이 아무리 좋아해도 출연자-제작진의 관계가 틀어지면 프로그램이 장수하기 어렵다. '무한도전'은 기존 프로그램들이 애써 포장했던 '화기애애'를 벗어던지며 웬만한 갈등은 '리얼'로 소화하는 노하우를 쌓았다. 출연자들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와중에도 꽤 진지하게 화를 내고, 삐지며, 서로를 뒷담화했다. '그깟' 바나나를 하나 먹으려고 진짜 이기주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연예인이 PD나 예능국장 앞에서 얼마나 작아지는지가 고스란히 나타나고 친하다면서 작가 이름도 모르는 상황이나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진짜 갈등이 공개되기도 했다.
자극적으로 묘사하면 출연자의 이미지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들이지만, '무한도전'은 이 관계들을 가볍게 오픈해버리면서 "우리도 시청자들과 다를 게 없는 일반 사람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10년이 흐른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예능 트렌드지만, '무한도전' 이전에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기도 했다.
김태호 PD 및 제작진을 향한 팬덤 또한 공고하다는 것도 '무한도전'이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멤버들의 사건 사고나 잦은 논란 끝에는 출연자든 제작진이든 '비난의 화살'이 향할 만한 사람을 찾게 마련인데 '무한도전'은 시청자들이 제작진에 대한 두터운 신뢰도를 갖고 있어, 이들의 결정을 믿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물론 이 두터운 신뢰도는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무한도전' 멤버 및 제작진에 대한 '너무' 높은 잣대가 형성돼, 다른 프로그램에선 그냥 넘어가는 일도 '무한도전'은 발칵 뒤집어질 일로 불거지기도 했다. 최근 식스맨 후보 장동민의 가치관 문제라던가, '무한도전' 콘서트 유료 개최, 하하 군입대 관련 특집 등의 문제가 그랬다. 이런 일들이 실제 '별일인지 아닌지' 여부는 차치하고, '무한도전'이었기 때문에 사태가 더 커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느새 멤버들은 모두 유부남이 됐고, 유명한 셀러브리티가 됐고, 크고 작은 논란을 극복(일부는 하차했지만)해낸 노련한 연예인이 됐다. 아마도, 꽤 부자이기도 할 거다. 이제 이 멤버들 중 그 누구에게도 '평균 이하'라 부르긴 어렵다.
무엇보다,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지상파 특유의 더딘 진화와 답답한 심의를 겨우 이겨내고 있을 때, 종편-케이블이 가볍게 판을 흔들어대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10년. '무한도전'은 계속 다를 수 있을까. 이들에게 이입하고 즐거워했던 '평균 이하'들은 멤버들과 함께 성장을 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나'를 찾아서 리모컨을 돌리게 될까.
쉽게 예측할 순 없지만, 25일 방송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서로의 '평균 이하'를 마음껏 놀리고, 무인도로 달려가 실컷 생고생을 하는 멤버들을 보면서 조금은 안심을 하게 된다.
ri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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