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 봄바람이 살랑인다. 차 안, 이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달려가는 상상을 해 본다. 바깥 풍경은 봄의 생명력으로 가득하고, 아카시아 향기가 창문 안으로 스며든다. 누군가와 같이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혼자라도 좋다. 하늘해는 실제로 이번 앨범의 주제를 '드라이브(drive)'라고 설명했다.
싱어송라이터 하늘해가 미니앨범 '스물셋, 그 오후'를 24일 발매했다. 2007년 5월, 첫 번째 정규앨범 '첫 사랑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후 무려 8년여만에 선보이는 미니앨범. 그 만큼 팬들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본인에게는 '초심'으로 돌아가 한 땀 한 땀 작업한 작품들이다.
"8년만에 나왔죠. 나름대로 1집에서 제 에너지와 감성을 굉장히 많이 쏟았어요. 그래서 좌절을 겪기도 했고, 음악적으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3년전부터 준비를 해서 지난 해 11월부터 하나씩 발표한 것들을 이번 앨범에서 모았어요. 본격 준비기간은 3년 정도 걸렸습니다."
'스물 셋, 그 오후'는 타이틀에서부터 느껴지듯 봄날의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을 담아낸 어쿠스틱 밴드 스타일의 음악. '왜 하필 스물셋이냐'는 질문에 하늘해는 "반짝이고 추억하고 싶은 나이와 시간, 계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23살 때를 돌이켜보면 연애를 열심히 하기도 했어요(웃음). 그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생각했어요. 현실적인 고민들 속에서 꿈을 쫓아야했기 때문에요. 하지만 애매하고 어설펐던 그 순간이 가장 반짝였던 시간이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23살 때 '열심히' 사귀던 그 여성은 이미 결혼을 했단다.
"그 나이, 그 때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때가 그리워요. 빤한 고민이고 그런 고민과 생각들이 추상적이고 엉켜 있었지만, 그 때 고민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3년여 전 다녀온 여행이 그에게는 큰 전환점이자 에너지가 됐다고. 하늘해는 "직접적인 경험으로 음악을 만드는 데 한계를 느꼈다"라고 회상했다. 자신만의 틀이나 주제를 벗어나지 못해서 답답했던 시기. 그런데 짧은 기간 동안 다녀온 여행이 그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당시 일본, 러시아, 유럽 등의 나라로 여행을 다니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그것을 음악에 녹여내고 또 음악을 넘어 다양한 시도로도 이어졌다. 실제로 그는 초콜릿뮤직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며 미술과 음악, 전시 등 여러 콜라보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이기도 한 '몇 번의 계절'은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로세 유코의 '러브북'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첫 사랑에 대한 아련하고 애절한 감정을 담아냈던 1집 앨범과는 달리 일상 속에서의 공감이 돋보인다. 그는 이번 앨범의 목표에 대해 '소통'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말하기 보다 함께 소통하고 즐기고 싶다고. 실제로 이전 앨범에서 모든 곡의 보컬을 맡았던 하늘해는 객원보컬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 곡 한 곡 간단한 설명을 들어봤다.
'라떼가 좋아', 보사노바 넘버. 하늘해의 달달한 코러스가 인상적인 커피송이다. "원래 저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해요. 하지만 라떼에 대한 노래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라떼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차분한 노래입니다."
'몇 번의 계절'. 일본에서 40만권 이상 팔린 히로세 유코의 심리 베스트셀러 '러브북'과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인 곡. "여자보컬이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가수를 꽤 오래 찾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녹음실에 갔는데, 개인 소장용 캐롤 녹음을 하러 온 가수의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죠. 맹지나 씨였어요. '영재육성 프로젝트'에 조권, 선예 씨랑 같이 나왔던. 현재 맹지나 씨는 여행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도와주시더라고요."
타이틀곡 '봄날 로맨스'. "믹싱을 다 끝냈는데 퀄리티를 위해 일주일을 미루고 다시 작업했어요. 서예나 씨가 피처링을 했어요. 이번 앨범은 다양한 뮤지션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목표거든요. (2015년 봄 캐롤송이 될 만한 노래네요)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눈 감으면 니가 그리워'. 감성 여행을 테마로 만들어진 노래. "러시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면서 영감을 받은 곡이에요. 엠넷 '보이스코리아'의 박수민 씨가 여자 보컬로 참여해 주셨어요. 맹지나 씨가 제 주문대로 곡을 완벽하게 불러줬다면, 박수민 씨는 자기 스타일로 노래를 재해석해 새롭게 소화해냈죠. 가수가 제 스타일이 아닌, 다른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니까 굉장히 신선했어요."
'드림 캐처'. '라떼가 좋아'부터 매달 한 곡 씩 발표해 오던 싱글 프로젝트의 마지막 곡. "유니크한 느낌을 살리고 코러스를 재미있게 해보려고 시도했어요. 결과적으로 예쁜 곡이 됐는데, 원래는 조금 '야한 느낌'을 주려고 가사에 도전을 해봤거든요. 근데 제가 그런 분야에는 정말 소질이 없더라고요(웃음)."
'이 겨울 웃음은 너란 이유'. 하늘해가 겨울 감성을 담은 유일한 곡. 노래 자체는 전형적인 발라드이지만 하늘해만의 특색있는 코러스 라인을 만들기 위해 수십트랙을 더빙해 완성했다. "마지막 트랙으로 겨울에 냈던 곡이에요.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외에 제 목소리만으로 사운드를 냈죠. 감기에 걸려서 코맹맹이 목소리가 나요. 콧물이 섞인 비음이랄까요. 하하."
이 같이 다양한 색깔로 가득한 노래가 담긴 이번 앨범에 대해 하늘해는 한 마디로 '여심'이라고 설명했다. 하반기에는 이 와는 다른 느낌의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이번 앨범이 여성스러운 화법이라면, 하반기 앨범은 보다 남자다운 느낌으로 해 보고 싶어요. 이번 앨범이 어쿠스틱한 사운드, 살랑이는 여자 보컬이 많다면 하반기에는 좀 더 세련되고 젊은 음악을 해보려고요. 크게 '여자, 남자'로도 구분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를 넘어 소통을 음악에 담아낸 그는 최근에는 애드나인프로젝트의 세 번째 싱글 '낡은 운동화'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하늘해와 애드나인프로젝트는 단단한 음악적 동료다. MBC 에브리원 '로맨스의 일주일2'에 삽입되기도 했던 애드나인프로젝트의 '718번 버스'를 듣고 깜짝 놀랄 만한 감명을 받았다고. 서로 음악에 대해 조언해주고 함께 작업해 온 사이다. 하늘해는 "'718번 버스'에 참여하면서 용기를 내서 음악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라고도 전했다.
'제 2의 이승환', '인디신의 이승환'이라고 불렸던 그는, 예전에는 그런 수식어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이젠 감사하게 생각하며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승환이 그의 노래를 직접 모니터해주기도. "가수 활동에 회의를 느낄 때, 이승환 선배님이 우연히 2013년 12월에 열린 회고전 콘서트 초대해 주셨어요. 그 때 투어기간 단독 게스트를 한 인연으로 발표된 노래를 전부 들려드렸죠. '젊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인 것 같다'란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는 자신의 음악이 "청춘의 배경음악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삶 속에 녹아들고 싶죠.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라고 외치는 게 아닌, 모두의 배경 음악 같은 음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앨범은 뭔가 도약할 수 있는 시작이 됐으면 좋겠어요. 되게 어렵게 준비를 했거든요. 뭔가를 다시 준비해서 한다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데, 이번 앨범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실제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이제 제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은 제 첫 팬이에요.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에요. 아예 처음으로,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지금의 저를 보여드리는 거죠."
참고로 '하늘해'는 그의 본명이다. '하늘해의 음악은 OO다'라는 설명을 주문하자 "하늘해의 음악은 꿈, 열정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그의 음악에는 슬퍼도 어둡지 않은 밝음의 정서가 묻어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이름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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