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수현는 최근 ‘마블의 신데렐라’라고 불리고 있다. 국내 드라마 주·조연을 오가던 그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그것도 ‘어벤져스’ 시리즈 출연 소식이 지난해 알려지면서부터다. 그를 잘 아는 업계 관계자들은 ‘준비된 신데렐라’라고 입 모았다. 단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얼굴, 177cm 큰 키에 유창한 영어 실력 등 할리우드에서 선호할 만한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보안 유지가 엄격한 할리우드의 특성상, 캐스팅 소감조차 마음껏 말하지 못했다. 1년 동안의 지난한 기다림 끝에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감독 조스 웨던, 수입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하 어벤져스2)이 지난 23일 개봉했다. 극중 수현이 맡은 역할은 닥터 헬렌 조.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친분이 있는 유전공학자로, 비전(폴 베타니)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인물이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벤져스2’ 이후 그에게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정작 그는 담담했다. 오히려 차기작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마르코 폴로’에 여전사 쿠툴룬 역으로 출연 중인 그는 시즌2 촬영을 위해 조만간 유럽으로 떠날 예정이다. 출국에 앞서 그로부터 ‘어벤져스2’와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벤져스2’로 인해 지난 1년 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할리우드 특성상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어땠나.
“기다리는 동안 긴장도 많이 되고, 어떻게 보실까 혼자 속병을 앓았다. 언제 한 번은 말하고 싶었다. 물론 촬영은 즐겁게 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할리우드는 보안 유지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 촬영장에서도 의상을 가리고 다녔다. 시나리오를 받을 때도 제가 직접 받아야 한다고 해서, 요원 같은 분이 찾아와 각종 문서에 사인을 하고 받았다. 만약 그 시나리오를 분실하거나 유출했다면 이런 인터뷰 자리는 없었을 거다.(웃음)”
=영화 말미 닥터 헬렌 조가 연구에 분주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때문에 ‘어벤져스3’ 출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다.
“보안 유지를 떠나 그와 관련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처음 캐스팅이 됐을 때 ‘마블 유니버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했으니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마블은 알 수 없으니까 확신할 수 없다”
=완성된 ‘어벤져스2’를 본 소감은 어떤가.
“보기 전에 무조건 만족할 거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이걸 통해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 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첫 걸음이라고 생각했다.”
=‘마블의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고 있다.
“할리우드 작품 오디션을 봤기 때문에 해외 작품을 언젠가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블 작품이라고 예상하진 못했다. 그 부분은 지금도 얼떨떨하다. 출연이 확정된 후에는 오히려 덤덤해졌다. 그때부터는 주어진 것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벤져스2’와 관련해 지금 축제 같은 분위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을 많이 정리한 상태다. 곧 해외 촬영이 있고, 그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많은 국내 관객들이 수현의 ‘어벤져스2’ 출연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되지는 않나.
“‘기대감이 크다’는 생각은 있다. 한국 배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나와 잘해줬으면 하는 기대들이 있는 것 같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빨리 유명해져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원래 페이스대로 가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어벤져스2’가 첫 할리우드 오디션이었나.
“그즈음 2~3편 정도의 할리우드 작품 오디션을 봤다. 그 중에는 ‘분노의 질주: 더 세븐’도 있었다. 해커 역이었다. 그 오디션은 떨어졌지만, 덕분에 ‘마르코 폴로’에 출연할 수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캐스팅 디렉터가 ‘마르코 폴로’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벤져스2’와 비슷한 시기에 ‘마르코 폴로’에 캐스팅 될 수 있었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했으면 ‘어벤져스2’도 못하고, ‘마르코 폴로’도 못했다.”
=언제부터 할리우드 진출을 준비했나.
“2006년에 슈퍼모델 대회가 끝나고 성룡에게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인연이 되서 성룡에게 연락을 받았다. 해외 진출이 가능한 일이겠구나 하고 그때 처음 느꼈다. 그땐 오디션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라 마냥 ‘신난다’라는 기분이었다. 이후 KBS 2TV 드라마 ‘도망자 플랜비’에 출연하면서 ‘영어 연기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힘들게 마블 유니버스에 합류했다. 그런데 영화에서 실험복만 입고 나와 아쉽진 않았나. (웃음)
“옷이 정말 멋지지 않았나. 의상도 굉장히 비밀리에 진행이 됐다. 신체 사이즈를 재는 것부터 상당했다. 피팅을 정말 꼼꼼하게, 4~5번 했다. 옷 하나에도 완벽을 기했다. 몸을 움직일 때 살짝 구겨지는 것까지 잡아냈다.”
=‘이게 할리우드구나’라고 실감했던 부분이 더 있다면 무엇이 있나.
“현장에 음식이 정말 잘 준비돼 있었다. (웃음) 고기를 못 먹는다. 해산물만 먹는 채식주의다. 회식 자리에 가면 상추만 먹는다. 그런데 촬영에 앞서 각 출연진에 대한 조사를 먼저 하더라. 어떤 음식을 못 먹는지, 혹시 알레르기는 없는지 등을 확인했다. 건강과 피부를 생각해 디톡스 주스도 항상 있었다. 현장에서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노’(NO)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어디선가 만들어 내더라. 음식 자체도 맛있었다. 개인 트레일러도 배정 받았다. 그곳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화렿나 트레일러를 준비해줬다. 프로페셔널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리우드는 일정 엄수에 엄격한 편인데.
“다들 일정을 정말 칼같이 지켰다. 한번은 누군가 출국을 해야 해서 갑자기 일정에 변동이 생겼다. 모든 출연자에게 미안하다고 선물을 줬다. 큰일을 하는 사람부터 사사로운 일을 하는 사람까지, 누구하나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손발이 착착 맞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호텔도 한 곳에 몰아놓지 않는다. 각자 사생활을 위해, 행여 마주치면 불편할까봐 다 다른 지역에 마련해 준다. 그런 것까지 신경써준다는 게 대단했다. 마치 공주 대접을 받은 느낌이었다.”
=수현의 국내 활동을 원하는 팬들도 있을 텐데, 국내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1주일 후 ‘마르코 폴로 시즌2’ 촬영을 위해 출국한다. ‘어벤져스2’ 이상으로 집중해야 하는 작품이다. 시즌1에서 캐릭터를 소개했다면, 시즌2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한다. 체력이 많이 소요되는 전사 캐릭터라 살도 찌우고 근육도 키우고 있다. 일단 ‘마르코 폴로 시즌2’를 위해 6~7개월 정도 해외에 머물러야 해 가까운 시일에 국내 활동은 힘들 듯 싶다. 국내에서 이어서 할 수 있다면 내년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해외 활동을 하면서 해외 에이전트도 생겼다. 기회는 예전보다 늘었다. 조급하게 결정하는 편이 아니라 국내든 해외든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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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