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장수’ 김인권, ‘웃픈’ DNA를 가진 남자 [인터뷰①]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4.28 06: 54

웃긴데 슬프고, 슬픈데 웃긴다. 상반되는 감정이 교차하는 미묘한 상황을 시쳇말로 ‘웃프다’고 표현한다. 이 단어에 부합하는 배우가 있다면, 배우 김인권이다. 영화 ‘전국노래자랑’(2012)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2012) ‘방가?방가!’(2010) 등 그가 맡은 캐릭터들은 제각각이었지만, 소시민의 울분을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약장수’(감독 조치언, 제작 26컴퍼니)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아픈 딸을 둔 가장 일범(김인권)은 신용불량에 머물 직장이 없다. 헤매던 그를 받아준 곳은 이른바 ‘떴다방’으로 불리는 홍보관이다. 바르고 양심적인 일범은 거짓 친절과 강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지만, 가족을 위해 어느새 자신과 물건을 팔기 시작한다. 평범한 남자가 약장수가 되는 과정과 홍보관을 찾은 외로운 노인들의 이야기가 먹먹하다.
이처럼 ‘약장수’는 같은 시기 극장에 걸린 작품들과는 거리가 있다.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도, 밝고 유쾌한 코미디도 아니다. 홍보관이란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인권이 맡은 일범은 생존의 세계에 내던져진 가장으로, 처절한 몸부림이 묵직함을 남긴다. 김인권은 “솔직히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며 “흥행을 떠나 정말 잘 나온 영화”라고 자부했다.

“그 동안 남편 역할은 있었지만, 아빠 캐릭터는 없었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가 태어났을 때, 일범처럼 처절하게 살았다. 배우로서 잘해보려고 애쓰던 시절이었다. 일범이 결국에는 얼굴에 분을 바르지 않나. 지금 나 역시 쌓아온 것들을 지키려고 어느새 보수적이 됐다. 일범을 연기하면서 과거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극중 일범처럼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있으면 말을 걸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안 그런다.”
‘약장수’ 포스터는 얼굴에 잔뜩 분칠을 한 일범, 즉 김인권을 담고 있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일그러진 표정이 인상적이다. 이는 영화 속 마지막 장면과 맞닿아 있다. 초반 어리바리한 일범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는 약장수의 모습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김인권이 아니라면 어떤 배우가 그런 누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에 대해 물으니 김인권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렇게 어려운 연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장면을 연기할 때 크게 의도한 건 없었다. 감독님이 웃고 있지만 슬픔을 표현해 달라고 했다. 분장하면서 울컥울컥했다. 분장 마무리를 직접 했다. 결국 일범이 절대악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 아닌가. 일그러진 얼굴 뒤에 순수한 영혼을 뭉개 버리고, 먹고 살기 위해 영혼을 팔아먹는 거다. 그 대목에 왜 울컥했는지 생각해 보면, 순수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김인권은 일범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작품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만큼 ‘약장수’를 치열하게 찍었다. 특히 일범과 옥님(이주실)의 ‘손가락 신’이 그랬다. 일범은 옥님의 가락지를 두고 갈등한다. 김인권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장면”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당초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다. 주제의식으로 인해 리얼리티가 무너진다고 수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편집기사님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고 말했다.
그의 열정은 뒤태 노출 장면에서도 느껴진다. 일범이 둔탁한 몸을 할머니들에게 드러내는 순간, 물컹거리는 살에 애환과 웃음이 고루 담겨 있다. 그는 “어머님들이 귀여워할 만한 아이같은 몸을 만들고자 했다. 뒤태가 그 정도면 귀여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사실 노출은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보통 노출을 하면 ‘공사’(신체 중요부위를 가리는 작업)를 하는데, 창고 같은 곳에서 벗어서 던지고 촬영했다”고 말했다. 
  
“촬영하던 시기 굉장히 무력하게 지냈다. 운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걷기만 하는 정도였다. 와이셔츠 입었을 때 아줌마들이 좋아할 수 있을 정도만 유지했다. 근육을 살로 덮었다. 그 장면은 옷을 다 벗고 중요부위만 손으로 가리고 찍었다. NG 없이 한 번에 오케이(OK)됐다. 다들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음향 스태프가 여자였다. 깜짝 놀라더라. 일범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엉덩이만 나왔으면 밋밋했을 거다.”
지금은 스크린에서 종횡무진하는 김인권이지만,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2009년 영화 ‘해운대’의 감초 캐릭터로 주목 받기 전이 그랬다. 방황하던 그때 코 시술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당시 1년 정도 작품 없이 쉬었던 이유를 그 때문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가라앉으니까 그때부터 일이 들어왔다. 그게 ‘해운대’였다. 욕심을 부렸는지 시술을 받은 후 코 모양새가 이상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자신을 창피해하면 배우인가 싶더라. 사회가 외모를 통해 자신감을 찾게 강요할 때 굴하지 않고, 다른 데에서 자신감을 회복한다면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력이라는 것은 자신감과 비례한다고 나를 다잡고 있다.
‘신이 보낸 사람’(2014) 이후 무력하게 지냈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이후 ‘신의 한수’, ‘타짜-신의 손’, ‘쎄시봉’까지 역할이 점점 작아지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농담조였지만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완성도에 집착하는 이유를 타고난 존재감 욕심으로 풀이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해야 한다. 훌륭한 예술가들은 항상 불평, 불만이 있다. 오래 연기를 한 선배들도 열등감이 있다. 그게 동기가 돼 세월을 끌고 가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누구보다 치열한  ‘존재감 욕심’을 ‘웃픈’ 연기로 펼쳐내는 김인권. 천생 배우라는 말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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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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