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 강선생’의 그 깊은 속을 누가 다 이해할 수 있으랴. ‘착하지 않은 여자들’ 김혜자의 측은지심이 배신자 이미도 뿐 아니라 안방 시청자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수 십 년간의 커리어를 흙탕물로 만들어버린 제자는 그렇게 배신을 안기고 떠났지만 김혜자는 그런 그를 끝까지 감싸며 존경할만한 스승, 따뜻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 30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극본 김인영 연출 유현기 한상우)에서는 제자 박총무 박은실(이미도 분)의 배신으로 충격을 받은 순옥(김혜자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박총은 인터넷에 ‘안국동 강선생’과 관련한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 12년간 일해 왔음에도 자신에게 수업을 맡기지 않는 순옥에 대한 불만과 그의 딸 현숙(채시라 분)에 대한 모종의 질투 때문이었다. 그간 박총은 자신보다 요리 감각이 더 뛰어난 현숙이 혹시라도 순옥의 수제자인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까 안절부절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현숙의 남편 구민(박혁권 분)을 짝사랑하는 상황. 열등감과 소외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결국 초조해 하다 일을 치고 말았다.
루머는 점점 더 확산됐고, 많은 수강생들이 발길을 끊었다. 한 방송사에서는 무례한 취재로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박총은 자신의 행동이 들킬까 조마조마하면서도 순옥의 요리법이 적힌 노트 원본을 대형 레스토랑에 넘기고, 현숙의 고등학교 시절 행적과 퇴학 사실까지 익명으로 방송국에 제보하는 등 갈수록 대담한 행보를 이어갔다.
이미 순옥은 여러 가지로 박총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었던 상황. 하지만 그는 박총의 마음을 헤아리며 “새로운 메뉴를 더 해오라”고 격려했고, 제자가 스스로 마음을 돌려주길 바라는 듯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봤다.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박총은 결국 현숙과 순옥 앞에서 숨겨져 있던 열등감을 폭발시켰다. 자신의 요리 맛을 좀 봐달라는 말에 현숙이 “대단하다”며 그의 이기적인 행동에 불편함을 드러낸 것이 계기였다. 박총은 “어릴 때부터 선생님 손맛 보고 자란 언니가 나보다 잘난 건 당연한 거 아니냐? 잘난 척 하지마라, 나보다 잘났다고. 나보다 못하는 사람? 세상에 많지 않다”고 갑작스럽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에 순옥은 방에서 나와 소란을 지켜봤고 박총은 “난 선생님이 좋고 요리가 좋아서 여기와서 군식구로 12년 살았는데”라며 “김현숙이 재수없다”고 소리를 지른 후 집을 나가버렸다.
이후 박총이 그간 저지른 비행의 전말은 낱낱이 밝혀졌다. 순옥의 요리교실 살림을 도맡아 하던 그는 장부를 허위로 기재, 횡령을 해왔다. 또 현숙은 그가 순옥의 요리 노트를 들고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철희(이순재 분)은 “사람보는 눈이 없다”며 순옥을 나무랐고 종미(김혜은 분)는 “횡령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한다”며 분노했다.
하지만 힘없이 누워있던 순옥은 오히려 박총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남기며 뭉클함을 자아냈다. 그는 메시지에서 “머위 들깨찜 합격이다. 바로 이 맛이야. 은실아 요리 노트는 내가 주는 선물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요리. 힘내는 요리를 만들도록 하라. 새 메뉴가 준비되면 언제든 돌아오고 넌 아주 훌륭한 제자였다”고 박총을 감쌌다. 또 "들깨찜에는 소금을 조금만 더 넣으라, 우리가 같이 주문한 천일염, 잊으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메시지를 확인한 박총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스승이 보여준 측은지심은 제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자신을 배신한 그를 원망하기보다, 조금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순옥의 품격은 진정한 애정이 없다면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참스승의 그것이었다. 이는 수십년간 모성애의 대명사로 불려온 김혜자의 이미지와도 잘 맞았다. 김혜자는 배신에 아프면서도 조용히, 담담하게 제자를 감싸는 순옥의 마음을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로 멋지게 소화했다. 김혜자는 곧 순옥이었고, 순옥이 곧 김혜자였다. 과연, 순옥의 절절한 사랑은 박총의 갱생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어쩌면 그의 변화를 끌어낼 유일한 인물은 순옥이다.
한편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뜨거운 피를 가진 3대 여자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리는 작품.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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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않여'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