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김고은 “김혜수, 함께하면 두려울 게 없었다” [인터뷰②]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5.02 10: 46

 
외로운 소녀다. 태어나자마자 지하철 10번 보관함에 버려졌다. 10번 보관함에 버려졌다 하여 ‘일영’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소녀는 이름 모를 남자에 이끌려 차이나타운에 내던져 졌다. 그곳에서 엄마라 불리는 차이나타운의 지배자의 손에 의해 자라났다. 고작 몇 천 만원에 사람을 죽이는 비정한 거리는 그렇게 소녀의 집이 됐다.
지난 29일 개봉한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 제작 폴룩스픽쳐스)에서 배우 김고은이 맡은 인물에 대한 소개다. 돌이켜 보면 그를 거쳐난 캐릭터들은 모두 외로웠다. 세상에 쉬운 연기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의 캐릭터들은 유독 강렬했다. 데뷔작인 ‘은교’(2012)에선 노년의 시인을 사로잡는 치명적인 10대 소녀였고, 영화 ‘몬스터’(2014)에선 살인마에게 맞서는 미친 소녀였다. 이번에는 반대로 제 감정을 꾹꾹 누르는 소녀 일영 역이었다.

일영은 그저 묵묵히 엄마의 명령을 따른다. 그 과정에서 격한 몸싸움이 있고 재떨이로 얼굴을 맞기도 하지만, 일영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온전히 버텨낸다. 이를 위해 김고은은 상당한 액션신을 소화하고, 후반부 감정을 폭발시킨다. 관객 눈에는 누구보다 고군분투하는 김고은이지만, 정작 본인은 “전작들이 더 힘들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학업을 병행하며 체력적인 고충은 있었지만, ‘차이나타운’ 촬영장을 가는 일은 행복했다.
“‘올드보이’(2003) 메이킹을 보면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현장이 매우 즐거워요. ‘보는 사람은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현장은 왜 이렇게 밝지?’라는 마음에 배신감을 느꼈죠. (웃음) ‘차이나타운’이 그랬어요. 배우, 제작진할 것 없이 다들 합이 잘 맞았어요. 함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죠. 물론 일영의 감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보다 차분해지긴 했죠. 친한 사람들을 만나면 밝아졌지만, 대체적으로 그랬어요.”
‘차이나타운’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김혜수와 김고은의 조화다. 충무로의 카리스마와 신성의 만남으로 불리며, 제작 단계에서부터 이 영화가 주목 받은 이유였다. 실제 두 사람이 같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집중도는 높아진다. 엄마와 일영은 유사 모녀 관계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사이 흐르는 감정은 평범한 모정이 아니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여 있다. 전개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감정들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김혜수 선배와 함께 촬영할 때 정말 좋았어요. 덕분에 현장이 밝았던 것 같아요. 촬영을 하면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하는 두려움인데, 이번에는 그런 순간들이 굉장히 적었어요. 함께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마지막 신을 앞두고 잠이 안 왔어요. 그런데 전날 감독님, 혜수 선배와 몇 시간씩 수다 아닌 수다를 떨었어요. 답이 나온 건 아니지만, 마음이 편해졌죠. 그런 분위기를 혜수 선배가 계속 만들어 주셨어요. 혜수 선배가 있으면 두려울 게 없었어요.”
김혜수는 늘씬한 몸매와 달리 군것질을 좋아하는 편이다. 평소에도 과자나 빵 등을 소지(?)하고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곤 한다. “촬영하다 보면 당 떨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럴 때 혜수 선배가 ‘먹을래?’라고 한다”며 김고은은 손가락으로 과자를 건네는 상황을 재현했다. 귀여운 몸짓에서 화기애애한 촬영장 분위기가 전해졌다. 김혜수와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김고은의 밝은 표정에서 선배 여배우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드러났다. 
 
‘차이나타운’에 앞서 촬영한 작품은 사극액션 ‘협녀’다. 당초 올 초 개봉 예정이었지만, 연말로 개봉이 미뤄졌다. “웬만큼 힘든 영화를 거치고 나니 ‘차이나타운’은 할만 했다”고 농담을 할 만큼 강도 높은 액션신을 매일 소화했다. 와이어에 매달려 있는 날이 대다수였다. 동시에 전도연, 이병헌 등 대선배들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차이나타운’에선 김혜수, ‘협녀’에선 전도연 등 이름 석 자가 충무로를 상징하는 여배우들과 호흡한 소감이 궁금했다.
“선배님들에게 감동했던 부분이 배려예요. 가장 편한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 주세요. 감정선을 잡고 있는 복잡한 순간에 (전)도연 선배는 항상 앞에서 기다려 주세요. 미안해 할까봐 무엇인가 하고 있는 제스처를 하면서요. 혜수 선배도 그렇고, 다 본받을 점이예요. 두 선배로부터 그런 걸 겪었기 때문에, 나 또한 누군가를 만났을 때 배려가 당연한 게 되는 것 같아요. 또 ‘협녀’를 통해, 도연 선배를 통해 영화 전체를 생각하는 법을 배웠어요.”
이를 설명하는 그에게서 쾌활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김혜수는 앞서 OSEN과 인터뷰에서 김고은을 두고 ‘특별한 사람’, ‘귀한 배우’라고 표현했다. 김혜수의 직관은 틀리지 않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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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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