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천만 돌파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개봉 며칠만의 기록이냐가 중요했다. 영화가 뚜껑을 연 후 '재미'나 '서울 때깔'이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천만이 다소 힘겨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찌됐든 3~4주차 다소 꺾인 기세에도 불구하고 17일 천만 돌파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개봉 25일만의 기록이다.
# '아이언맨3' 봤던 900만, 당연히 '어벤져스2'도 볼 것
적어도 이 영화는 900만 이상이 볼 것으로 기대됐다. 아이언맨은 물론이고, 캡틴아메리카, 토르, 헐크, 블랙위도우, 호크아이가 총출동하니 이들의 팬이 다 모이면 '아이언맨3' 관객수보단 많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는 아이어맨 광팬들의 n차 관람을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긴 했다. 히어로들이 분량을 나눠 맡은 '어벤져스'가 '아이언맨' 시리즈만큼 강력하게 아이언맨 팬들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쳐도 '어벤져스' 전작의 성적인 700만은 가뿐하게 넘을 게 분명했다.
실제로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마블은 시리즈가 진행되면 될수록 팬덤을 불리고 있는데 이번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천만 돌파도 이를 입증하는 역할을 해냈다. 2008년 '아이언맨'이 430만, 2010년 '아이언맨2'가 450만, 2012년 '어벤져스'가 700만, 2014년 '아이언맨3'가 900만이니, 아이언맨과 '어벤져스'가 시너지를 내며 톡톡히 관객을 불려온 셈이다. 그 사이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도 관객 급등 효과를 봤다.
당연히 상승세는 둔화되겠지만, 천만까지 팬덤을 불리기엔 충분했던 상태. 마블 세계관에 열광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에 두 눈을 맡기는 관객 수가 이토록 많아졌다는 점은 미국의 히어로 문화에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자랐던 세대에게 어떠한 '변화'가 생겼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 서울 홍보는 몰라도 '어벤져스' 홍보는 톡톡
이 영화는 지난해 4월부터 각종 미디어를 뒤덮으며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에서는 최초로 지금의 서울을 그대로 촬영하기 위한 로케이션 촬영에 나섰기 때문.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가 서울을 직접 찾아 팬들은 물론이고 모든 미디어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서울 홍보의 경제적 효과가 2조원이라 될 것이라는 설레발은 미디어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2조원에 방점을 찍어 호들갑을 떨든, 2조원은 오버라며 딴죽을 걸든,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관련 보도는 큰 화제를 모았다.
'반지의 제왕'의 뉴질랜드처럼 로케이션이 하나의 테마를 상징한다면 몰라도 블록버스터에 잠깐 나오는 도시가 관광 유치 효과를 볼 거라는 추측은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북한과 남한이 잘 구분도 되지 않던 기존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만 봐온 국내 관객들에겐 지금의 '발전한' 상암동 등지가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기존 마블 영화 관람객 수 900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팬이 아니어도, 스칼렛 요한슨이 서울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작 영화는 기대만큼 '세련되게' 서울을 담아내진 않았지만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다른 영화와 완전히 다른 폭발력을 가진 데에는 서울 로케이션의 힘이 결코 적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 한국 영화가 알아서 기었다
너무 거물이었던 거다. 한국 영화들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줬다. '차이나타운', '약장수' 등이 함께 개봉하긴 했지만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맞붙었다기 보단, 조심스레 틈새시장을 노렸다고 볼 수 있는 상태.
진짜 경쟁을 해볼만했던 CJ엔터, 쇼박스, 뉴, 롯데엔터는 신작을 5월 중순 이후로 미뤘다. 털어가시라고 빈집을 내준 셈.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스크린 1700개를 점령하자, 일각에서는 독과점이 너무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 명백한 독과점을 영화사나 극장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유통 경로를 장악해서 소비자들의 권리를 제한했다기보단, 소비자들의 요구가 너무 강력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
막대한 자본을 들여 이런 영화를 쏟아내는 게 과연 영화계를 위해 옳은 일이냐고 논의를 해볼 순 있겠지만, 점차(어쩌면 이미) 블록버스터 위주로 판이 짜이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이 영화에 맞붙지 않았다고 한국 영화들을 비겁하다고 폄하하기도 어렵다. 수년간의 노력과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는 영화 사업 특성상 깨질 게 뻔한 모험을 하라고 할 순 없는 노릇.
문제는 앞으로 마블 영화가 나타날 때마다 이런 한국 영화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거냐 하는 것. 서울 로케 프리미엄 없는 향후 신작들의 경우는 좀 덜하겠지만, 그래도 이미 '천만'을 찍은 화력은 충분히 겁이 날 만하다. 특히 할리우드는 팬덤과 자본을 모두 자랑하는 시리즈물을 연이어 선보이며 흥행이 보장된 영화를 다수 내보내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풀어나가야할 시점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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