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선수 안현수가 ‘휴먼다큐 사랑’에 출연해 러시아로 귀화한 진짜 이유를 밝힌다.
오는 11일과 18일 오후 11시 15분에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랑’은 ‘안현수,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안현수와 우나리 부부가 출연한다. 내레이션은 배우 이유리가 맡았다.
전 세계가 올림픽의 열기로 들썩이던 지난 2014년 2월. 쇼트트랙 우승의 영광은 한국이 아닌 러시아에 돌아갔다. 러시아 쇼트트랙 사상 최초의 메달을, 그것도 세 개의 금메달과 하나의 동메달로 전 종목 석권의 영광을 안긴 승리의 주역은 빅토르 안. 불과 8년 전,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의 한국 이름은 안현수다.
천재적인 스케이트 실력에도 불구하고 빙상계의 파벌, 왕따와 같은 각종 구설에 시달렸던 그는 2008년 부상과 팀의 해체로 하루아침에 세계 챔피언에서 백수가 되어 추락했다.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폄하와 함께 그는 돌연 2011년 러시아로 귀화를 선택하며 충격을 안겼다.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던 모국을 뒤로 한 채, 제2의 조국 러시아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던 안현수. 삶의 밑바닥에서 그를 일으켜 준 것은 아내 우나리의 진실된 사랑이었다.
한국이 낳은 비운의 천재 스케이터 안현수. 그가 직접 전하는 그간의 비화, 그리고 두 번째 조국 러시아에서의 삶과 스케이트를 향한 멈추지 않는 열정을 들여다본다. 나아가 기적과도 같은 재기를 가능케 한 아내 우나리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전한다.
“이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외로움이 아니라, 그냥 그 무리 속에서 저 혼자 버텨내야 되는 외로움이 너무 힘들었던 거 같아요.”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5연패. 2002년 올림픽을 시작으로 5년간 세계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던 쇼트트랙의 황제 안현수. 전 세계의 모든 쇼트트랙 선수들은 그를 닮고 싶어 했고, 빙상계의 아이돌이란 수식어와 함께 수많은 팬이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보였던 그의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길고 짙었다. 빙상계의 파벌. 그로 인한 견제와 폭행까지... 가장 높은 곳에 있었기에 누구보다 외로웠던 안현수. 그저 스케이트가 좋아서 시작했던 선수 생활이 불행해져가던 무렵 그는 왼쪽 무릎의 치명적인 부상과 소속팀의 해체로 하루아침에 백수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런 안현수에게 손을 내민 것은 지금의 아내, 우나리였다. 10년 간 팬으로 그를 멀리서 지켜봤던 그녀에게 그의 시련은 남 일 같지 않았다. 그의 모습 위로 학창 시절부터 배우를 꿈꾸며 몸담았던 기획사의 부도로 꿈을 잃고 방황했던 지난날의 자신이 겹쳐졌다. 그녀는 그토록 좋아하던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주고자 내민 손길은 운명이 되어 사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나긴 부상의 후유증, 거듭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의 탈락. 한국의 어느 실업팀도 안현수를 데려가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와중에 러시아에서 영입을 제안해왔다. 재기 불가능한 선수가 된 그의 가능성을 믿겠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가고 있었지만, 미래가 없던 그는 그녀에게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그에게 있어 쇼트트랙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았기에 붙잡을 수 없었다.
“안 갈 수만 있으면 정말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정말 제가 운동을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선택의 폭이 없었어요. 그냥 이 운동이 너무 절실했기 때문에...”
오직 쇼트트랙 선수로 올림픽에서 재기하고자 선택한 러시아 귀화. 하지만 그마저도 평탄치 않았다. 한국에서 러시아 빙상연맹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문제가 많은 선수이니 절대 받아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너무 충격적인 거죠. 내가 러시아 오는 것까지 한국에서 누군가가 러시아 빙상연맹에 전화를 해서 이 선수를 받으면 안 된다고 했다는 게요.”
하지만 재기를 해야만 하는 그에게는 절망할 시간조차 없었다. 러시아 첫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안현수의 성적은 최하위권. 여자 선수들보다 못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다시 기량을 되찾기 위해 그는 미친 듯이 훈련에 매달렸다. 성치 않은 무릎으로 쉼 없이 달렸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체중을 60kg까지 빼기도 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그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갔다.
한편 그녀는 오직 그를 지켜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러시아로 향했다. 찰나와 같은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녀는 그의 곁을 지켜주겠다고, 남겨진 그는 결혼을 결심했다. 그녀는 혼인 신고부터 하자는 그의 절박한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부모에게조차 알릴 수 없는 비밀 결혼을 감행했다.
“평생 나의 사람이 생긴 거고, 누가 뭐래도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거니까. 항상 외롭다고 느끼면서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자리가 저한테 정말 소중하고 컸어요.”
“내가 못하면 이 사람이 욕먹을 수 있으니까 꼭 내가 성적으로 잘 보여주고 이 사람과의 관계를 떳떳하게 밝혀야겠단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기 때문에...”
2014년 2월. 그는 안현수가 아닌,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8년 만에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섰다. 노장인 데다 심한 부상을 겪었던 그가 메달을 획득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곁을 지켜준 그녀를 위해, 또 지난날 좌절했던 자신을 위해 재기를 꿈꿨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그가 첫 경기인 1,500m에서 3위를 한 데 이어 남은 모든 경기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것이었다. 그는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로 러시아 쇼트트랙 사상 최초의 전 종목 메달을 안기는 기염을 토했다.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에 대한 애정. 그리고 제가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너무나 커요. 저에게 기회를 준 러시아한테도 굉장히 감사하고요.”
그러나 시상대에 오른 순간 그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껏 버텨온 시간, 기적 같은 꿈을 함께 이뤄낸 그녀에 대한 사랑. 또 자신을 믿어준 러시아를 향한 고마움과 태어나고 자란 모국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시상대에 선 그를 바라보며 그녀 또한 생각했다. 한국의 유니폼을 입고 여기에 섰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한국의 국가대표로 뛰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녀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이후,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자제해왔던 그가 어렵게 ‘휴먼다큐 사랑’ 카메라 앞에 앉았다. 작년 12월부터 안현수 부부를 밀착 취재하며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살아가는 것이 유일하게 허락된 부부의 일상, 소치 올림픽 이후 러시아에서의 영광의 나날들. 그리고 안현수가 세상에 처음 이야기하는 그간의 비화와 아내 우나리와의 사랑까지. 국내 방송 최초로 안현수 부부의 모든 것을 독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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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