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앵그리맘’은 톱스타 김희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가 배우의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음을 대중에게 알리는 기회였다. 학교 폭력 문제를 전면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에서 김희선은 아픈 사회에 울부짖는 엄마였다. 더 이상 그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한국 사회가 들썩이는 신드롬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배우로서의 향기는 더욱 짙어지고 있어 반갑다.
지난 7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은 김희선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억척 아줌마 변신이 인상적인 드라마였다. 그가 연기한 조강자는 학교 폭력에 아파하고 전전긍긍하는 이 땅의 많은 엄마들의 고민을 대변했다.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였던 김희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의 패션이 유행이 되던 시절 김희선은 설익은 배우였다. 언제나 부족한 연기가 입방아에 올랐지만 그가 출연했다 하면 드라마는 큰 인기를 누렸으니 가히 ‘김희선의 시대’였다.
30대에 접어들고 결혼 후에도 여전히 미혼 신데렐라 역할을 맡았다. 변하지 않는 미모만큼이나 언제나 예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오해를 샀다. 조금씩 극중 인물의 성격에 변화를 줬지만 대중은 김희선의 미모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랬던 이들이 김희선의 연기를 달리 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방송된 ‘참 좋은 시절’부터였다.
억센 사투리 연기와 화려하지 않은 옷차림의 인물에 빠져든 후 김희선이 달라보였다. 투박한 말투 속 진심을 전해야 하는 연기에서 김희선은 달라졌다. ‘연기 좀 한다’라는 칭찬이 들리기 시작했고, 작품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첫 엄마 연기인 이번 ‘앵그리맘’ 출연이 가능했던 것은 ‘참 좋은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발차기를 하고 끓어오르는 모성애에 눈물을 흘리고 주먹을 날리는 엄마 조강자가 김희선이라는 옷을 입었을 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김희선은 예뻤다. 그래도 딸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고 심지어 고등학생으로 위장할 수 있는 절절한 엄마 그 자체였다. 귀한 자식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는 엄마의 심정을 김희선이 연기하면서 공감대를 만들어갔다. 누가 김희선이 연기하는 엄마에 몰입하게 될 줄 알았을까. 김희선은 이 드라마 출연 전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과거에는 눈물 연기를 할 때 인형처럼 눈물만 흘렸는데 요즘에는 콧물까지 다 흘린다는 것. 그만큼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졌고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극도로 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세월이 흘렀고 배우 김희선은 성장했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는 유지한 채 성숙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앵그리맘’ 조강자의 시원시원한 행보에 시청자들은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조강자가 가슴이 미어질 때 함께 조마조마하며 울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예쁜 김희선이 아닌 우리네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흡인력 높은 연기를 보여준 것.
‘앵그리맘’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시청률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드라마가 전하는 묵직한 사회적인 접근이나 뛰어난 완성도, 배우들의 구멍 없는 연기력이 매회 화제가 됐다. 특히 김희선의 엄마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며 우리가 몰랐던 배우 김희선의 연기 구력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여러 번 찾아왔다. 폭발력 있는 인기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연기를 하는 김희선의 모습을 즐겁게 볼 수 있는 시대가 새롭게 찾아왔다.
한편 ‘앵그리맘’은 마지막 회에서 강자가 홍상복(박영규 분) 일당을 법의 심판을 받게 했지만 정의 구현은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 낮은 형량을 받았고 심지어 상복은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빠져나왔다. 대신 권력의 개였던 상복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권선징악은 이뤄졌다.
‘앵그리맘’ 후속인 ‘맨도롱 또똣’은 화병 걸린 개미와 애정결핍 베짱이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하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오는 13일 오후 10시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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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제공, ‘앵그리맘’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