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여풍(女風)이면, 예능은 남풍(男風)이다. 지상파 3사 간판 예능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남성 출연진 중심이다. 비예능인들이 예능에 다수 진출하면서, 여성 예능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경실 조혜련 박미선 이영자 김지선 등 40대 여성 예능인은 풍성한 데 비해 그들을 이을 마땅한 후임자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럼에도 최근 떠오른 이가 장도연이다. 2007년 KBS 22기 공채 개그맨로 데뷔했지만, 이렇다 할 한방이 없었다. 175cm 큰 키에 모델 버금가는 늘씬한 몸매, 코믹한 춤 등으로 기억되는 정도였다. 진가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지난 1월 방송된 tvN 패러디 드라마 '미생물'이었다. 극중 안영이 역을 맡은 장도연은 엉터리 러시아어 연기로 큰 웃음을 선사했고, 이후 tvN '택시' MBC '라디오스타' '세바퀴' SBS '런닝맨' JTBC '썰전' '마녀사냥' 등을 휩쓸었다.
그의 입담과 끼는 지난 8일 오후 방송된 케이블채널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천생연분 리턴즈'에서도 빛났다. 우선 개인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차분한 음악이 전주로 흘러나오자 "다른 면모를 보여주겠다"며 진지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그가 부른 곡은 박정현의 'P.S 아이 러브 유'로, 박정현 특유의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흉내 냈다. 이어 한국과 해외 화장품 CF를 재연했다. 각기 다른 특징을 온몸으로 표현했고, 출연진들의 공감을 샀다.
능청스러움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장도연은 박기량에 관심을 표현하는 양상국에게 "내 눈에만 양상국 귀가 빨갛게 보이느냐"며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아랑곳하지 않는 양상국에게 "잘 안되면 소주나 먹자"고 말하며 특정 소주 브랜드를 언급했다. 양상국의 전 여자친구인 천이슬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브랜드였다. 결별 이후 연애버라이어티에 출연한 양상국을 놀리는 '돌직구' 멘트였다. 동시에 동료 개그맨인 장도연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예능에서 활약이 눈부신 가운데, 그는 자신의 고유 영역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tvN 개그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다. 그를 찾는 예능은 늘었지만, '썸 앤 쌈' 등 기존 코너를 통해 웃음을 선사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지 않다. 지금 장도연을 있게 한 밑바탕이자 힘이었다.
물론 영원한 것은 없다. '대세'라 불리는 이들도 저무는 때가 온다. 그럼에도 볼수록 매력 있는 ‘예능의 딸’ 장도연의 재발견은 여성 예능인 발굴이란 점에서 뜻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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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연분 리턴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