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꽃중년'이라는 말이 유행일 때가 있었다. 중년 배우, 특히 남자 중년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을때 중년 남성만이 풍길 수 있는 중후한 멋과 오랜 배우 생활을 통해 쌓아온 안정적인 연기력은 대중이 이들을 향해 환호하도록 만들었다. 20대 남자배우들 못지 않게 여심을 사로잡는 중년 배우라는 말, '꽃중년'이라는 단어는 이때 탄생했다.
본인은 아주 평범한 얼굴이라며 스스로를 평하지만 배우 손현주 역시 '꽃중년'에 포함되지 않을까. SBS 드라마 '추적자:더 체이서'에서 말그대로 미친 연기를 선보이며 단숨에 '꽃중년' 반열에 이름을 올린 그는 이후 개봉한 '숨바꼭질'을 통해 그 입지를 공고히 했다. 물론 조각같이 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그의 앞에 '꽃'이라는 수식어를 달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런 그가 몇 편의 드라마 이후, 또 한 번의 스크린 주연작으로 대중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꽃중년'의 귀환을 바라는 영화 팬들에겐 굉장히 기쁜 소식일터. 스릴러 영화 '악의 연대기'에서 궁지에 몰리는 최창식 반장 역을 맡은 그는 이번에도 강렬한 연기로 약 102분 간의 러닝타임 내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열연에 남다른 고충이 있었다. 삼청동에서 만난 손현주는 "외롭고 괴롭고 힘들었습니다"를 계속해서 토해냈다. 우발적으로 살인한 뒤 이를 은폐하는 최창식 반장의 캐릭터 덕분에 촬영 내내 그는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
"시나리오는 정말 재밌었는데 그만큼 촬영이 힘들었습니다. 동료들한테도 이야기를 못한다는 것이 고통이었죠. 누구한테도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 그런 것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이 제일 힘들었던 그이지만 분명, 체력적인 고통도 상당했을 터였다. 그는 '악의 연대기' 촬영 전,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고 지금 현재 몸 상태도 나쁘지 않지만 체력적인 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것. "몸 상태가 온전했다고 하면 이상한 것이겠죠"라고 말하면서도 "내 선택이었으니까요"라며 끝까지 '악의 연대기' 촬영에 임했던 이유를 전하기도 했다.
"작품이 5월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몸 때문에 다들 기다려줬고 그것에 대해 마동석, 박서준, 최다니엘 등 배우들과 스태프들께 감사드려요. 스태프들은 대단히 바쁜데 어쩔 수 없는 입원 때문에 한달 미뤄졌죠. 몸이 온전하다고 하면 이상한 것이겠지만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을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을 마무리짓고 싶었고 완성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하지만 열심히 만들어진 작품이 '악의 연대기'다. 오는 14일, 영화 팬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손현주는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두려운데 주연 욕심을 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의 속내를 담담히 전하기 시작했다.
"더 높이 올라갈,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되게 두려워요. '악의 연대기'도 나 혼자 한 것이 아니고 마동석, 박서준, 최다니엘 등 배우들이 다 함께 만든 영화입니다. 절대로 나 혼자 한다고 생각 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개인적으로는 제 스스로 무너질 것 같습니다. '숨바꼭질'도 대단한 문정희, 전미선이라는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죠."
'추적자:더 체이서', '숨바꼭질', '악의 연대기', 그리고 차기작 '더 폰'까지 스릴러 전문 배우로 거듭난 손현주의 앞으로 행보는 어찌될까. 간담회에서 "베드신을 해보고 싶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낸 그는 밝은 영화들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일단 좋은 시나리오가 우선 순위라고 했다. 장르 불문,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언제든지 스크린에서 손현주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시나리오가 오면 작품을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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