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작가가 은퇴한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백야’가 오는 15일 종영하면, 더 이상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될까. 임성한 작가는 최근 측근을 통해 이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집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말이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1990년이었다. 임성한 작가가 안방극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KBS ‘미로에 서서’라는 드라마였다.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MBC ‘보고 또 보고’였다.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겹사돈’이 소재였다. 이때까지는 재밌고 신선한 드라마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인어 아가씨’가 대박을 터뜨렸고, ‘하늘이시여’까지 성공시켰다.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은 작위적인 설정이 문제였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는 인정받았다.
문제는 ‘신기생뎐’과 ‘오로라공주’ 때부터였다. 그동안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를 내세웠어도 일단 재미는 있다는 강점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작품부터는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임성한 작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극심해진 것은 내세론과 운명론에 휩싸여 죽음을 마치 장난처럼 여기기 시작한 ‘신기생뎐’ 때부터였다.
이후 ‘오로라공주’에서 10명이 넘는 출연자가 갑작스럽게 빠지면서 방송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여기에 시청자들의 비난의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방송을 강행하고, 또 다시 새 작품을 편성한 방송사에 대한 불만까지 더해지며 ‘압구정백야’는 방송 내내 욕을 먹었다. 그래서 임성한 작가가 10번째 작품인 ‘압구정백야’를 끝으로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아쉬워하는 이들보다는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 많았다. 막장 드라마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달리긴 했지만 임성한 작가가 인기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필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다만 그의 보통의 상식을 뛰어넘는 불통의 행보는 이 같은 드라마계에 족적을 남긴 행보마저 퇴색시켰다.
사실 임성한 작가의 작품은 인간의 속물근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더러운 욕망에 휩싸여 있는 이들을 전면으로 배치해 욕하면서 보게 만든다. 노골적인 불륜과 끝도 없는 갈등, 패륜으로 뒤틀린 가족 관계, 누구 하나 정상적인 인물이 없어 뒷담화를 하게 하는 구성이 임성한 작가의 작품을 ‘막장’이라고 명명하는 이유다.
개연성 없는 이야기는 당연지사. 독특해서 시선을 빼앗은 후, 시청자들의 말초적인 험담을 유발한다. ‘압구정백야’의 전작인 ‘오로라공주’는 극중 인물들이 차례대로 죽는 ‘대량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죽하면 극중 죽음을 맞는 인물들을 숫자로 세는 일이 생겼다. 상식은 없고, 올바른 일은 더더욱 없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보면 불쾌하다. 많은 이들이 불편해하는 드라마지만 MBC는 끝없이 기용을 했다.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압구정백야’가 편성된다는 소식, 그리고 방송 내내 기함하는 전개로 논란이 일 때마다 MBC의 무책임한 방송 윤리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점점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게 방치한 MBC의 방임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시청률 지상주의는 임성한 작가가 ‘막장의 끝’을 만들 수 있는 불편한 원동력이 됐다. 그럴 듯한 이야기로 안방극장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시청자는 본다’는 자신감 속에 무시무시한 비현실적이고 비윤리적인 이야기가 쏟아졌다. 문화 선도를 이끌어야 하는 방송사로서의 책임의식이 부재했다. 임성한 작가에 대한 MBC의 애정은 거대 방송사의 횡포로 보였다.
임성한 작가의 은퇴 선언은 드라마보다 파격적이었다. 은퇴 선언 당일 MBC 드라마본부장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출석해 더 이상 임성한 작가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 가운데 측근을 통해 그의 은퇴 결심이 전해졌다. 꽤나 오랫동안 이 같은 생각을 해왔다는 것.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깜짝 선언이었다. 드라마 작가가 공식적으로 은퇴를 하겠다고 말을 하는 것도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받는 임성한 작가니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일으킨 깜짝 놀랄만한 파장의 끝은 어디일까. ‘압구정백야’를 끝으로 정말 우리는 더 이상 막장 세계를 보거나 듣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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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