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지호는 반전의 사나이다. 조각상 같은 외모와 멀쩡한 허우대로 지질함과 허술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 간극이 웃음 포인트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을 때 드러나는 눈가의 주름이 인상적이다. 차근차근 연애 상담을 해줄 땐 왠지 모를 친근함이 생긴다. 그가 선보인 지난 캐릭터들이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는 여기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연애의 맛’(감독 김아론, 제작 청우필름)의 왕성기도 마찬가지다. 산부인과 의사인 그는 과거에 벌어진 사건으로 연애와 담을 쌓고 산다. 관능적인 여인이 적극적으로 다가와도 마다한다. 늘 티격태격하던 비뇨기과 여의사 길신설(강예원)을 만나 서서히 아픔을 치료해 간다. 마냥 유쾌한 ‘19금’ 로맨틱 코미디 같지만, 그 안에 각자의 사연과 아픔이 담겨 있다. “원래 좀 더 진지한 시나리오였지만, 코미디 요소가 가미됐다”고 덧붙였다.
“소위 생각하는 ‘싼티’나는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가볍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VIP 시사에 온 지인들에게 솔직히 평가해달라고 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재미있었다’고 하더라. 재미있다고 판단해 선택한 작품인데, 남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안 되지 않나. 1년 전에 찍은 건데, 그 말에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오지호는 낯선 산부인과 의사 역을 맡아 고군분투했다. 익숙하지 않은 관련 용어들은 부끄러웠고, “공구와 다를 바 없는” 수술 도구를 마주했다. 시종일관 자신을 유혹하는 인영(하주희)와 육탄전(?)도 벌인다. 하지만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는 그에게 맞춤옷이었다. 드라마 ‘환상의 커플’(2006) ‘칼잡이 오수정’(2007) ‘내조의 여왕’(2009) ‘직장의 신’(2013) 등을 통해 웃음을 선사한 그다. 비결을 묻자 진지한 표정으로 “일부러 웃긴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순간에 이 대사를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미없으면 마는 거다. 그게 몸이 베이면 느낌이 온다. 웃긴 대사가 아니지만, 상황적으로 웃음을 준다. 극중 ‘헤퍼보여요’라는 대사도 시간차와 대사의 톤 등 때문에 웃긴 것이다. 그보다는 진심을 담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강예원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런 부분에서 의견이 통해 강예원과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강예원의 독특함은 오지호에게 기분 좋은 자극이 됐다.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 같은 이야기에도 강예원과 다른 배우들의 반응이 전혀 달랐다. 강예원의 예상하지 못한 답변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됐다. 그는 “강예원은 개성이 강하지만 연기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열려 있다”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왜요?’라고 하지 않고 ‘아, 그래요?’라고 답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사실상 오지호는 현장에서 ‘맏오빠’였다. 배우와 감독의 중간에서 양측 이야기를 듣고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이제 습관이 됐다”는 그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 촬영장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좋아진다. ‘연애의 맛’이 그랬다”고 말했다.
“극중 (하)주희씨가 노출이 있는 코스프레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 의상을 입고 현장을 막 돌아다녔다. 착하고 여성스러워 부끄러워 할 줄 알았는데, ‘뭐 어때’라면서 타월도 제대로 걸치지 않았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웃음) 현장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그런 셈이다.”
왕성기는 과거의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실제 오지호는 지난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물었다. 긍정적인 성격이라 쉽게 털어버린다고 말했다.
“연기를 하면서 많이 깨달았다. 원하는 삶이 있지만,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나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 왕성기는 숨기는 사람이다. 아픔이 있는 사람이 그렇듯, 감추려 하기 때문에 겉모습에 신경을 쓴다. 의사 가운에 손을 넣는 모습이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 과거 장면에서는 의사 가운 앞에 손을 넣고 있지만, 현재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은 부분이지만 의도를 담았다.”
오지호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운동이었다. 그는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스포츠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촬영이 몰아칠 때도 운동을 하고 나면 개운해 진다”며 운동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해 4월 결혼한 아내와 골프를 즐기거나 함께 피트니스센터를 가며 취미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올해 자녀계획을 세웠다는 그는 “아들이면 같이 운동을 하고 싶다”며 “나를 닮았으면 선수도 가능할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내달부터 오는 8월 방송예정인 OCN 드라마 ‘처용2’ 촬영에 돌입한다. 시즌1에 이어 귀신 보는 형사 윤처용 역을 맡는다. 올해 3월까지는 JTBC 드라마 ‘하녀들’에 힘썼고, 최근에는 영화 ‘연애의 맛’ 홍보에 매진했다. 지난 6일에는 제 16회 전주국제영화제 시상식 사회를 맡는 등 알찬 올해를 보내고 있다. 코믹과 진지를 넘나드는 그의 행보는 당분간 쉼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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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