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남편의 세컨드(?)에게 분노의 소금세례와 ‘혜자킥’을 날리긴 했지만, 결국 김혜자는 용서의 아이콘이었다. 특히 십 수 년 간 자신의 밑에서 일을 하다 치명적인 배신을 한, 제자 이미도를 향한 사랑과 용서의 깊이는 범인이 생각하지 못할 정도.
지난 13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극본 김인영 연출 유현기 한상우)에서는 자신의 레시피 노트를 훔쳐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로 취직한 박총(이미도 분)을 찾아가는 순옥(김혜자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박총은 순옥이 운영하는 요리학교의 요리살림을 도맡아했던 했던 점을 이용, 횡령을 저질러왔고 이 사실이 들킨 후에는 오히려 순옥이 재정 비리를 저질러 온 것처럼 거짓 폭로해 모욕을 줬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옥이 택한 방식은 이해와 용서였다. 그는 도망간 박총에게 “은실아 요리 노트는 내가 주는 선물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요리. 힘내는 요리를 만들도록 하라. 새 메뉴가 준비되면 언제든 돌아오고 넌 아주 훌륭한 제자였다”고 격려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감동을 만든 바 있었다.
이날도 순옥의 따뜻한 사랑은 계속됐다. 그는 “나를 도둑으로 몰아 할 수 없이 나오게 됐다”며 매스컴에 대고 또 다시 거짓말을 하는 박총에게 분노하지 않았고 “내가 야단을 치겠다”는 모란(장미희 분)을 말리며 “그냥 놔두라”고 했다. 이어진 것은 “은실이가 힘이 드는가보구나”라는 독백.
이후 순옥은 박총이 일하는 레스토랑을 찾아 음식을 주문했다. 제자가 만든 음식을 먹는 그의 얼굴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들이 담겨있었다.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도 순옥은 음식을 다 먹었고, 부엌에 있는 박총에게는 손님이 주고 간 것이라며 쪽지가 하나 전달됐다.
쪽지에는 ‘맛있는 음식 감사합니다. 정성이 느껴지네요, 아주 맛있게 먹고 힘나서 갑니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지금은 이것만 생각하세요.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맛있는 걸 만든다. 그러면 겁날 것이 없어요. 자신감을 가져요. 이미 훌륭하니까. 겁먹지 말고, 힘내고’라는 격려의 말이 적혀 있었다. 순옥이 보낸 쪽지라는 것을 안 박총은 눈물을 흘리며 따라나섰지만 스승을 만날 수는 없었다.
순옥이 끝까지 선택한 것은 용서였다. 제자를 위해 그가 흘린 눈물은 억울하고 화가 나서가 아니라, 십 수 년 간 자신의 옆에서 지켜봐 온 제자를 깊이 이해하기에 가능한 연민의 눈물이었다.
순옥은 매우 인간적인 캐릭터다. 평소에는 부드럽고 우아해 보이지만 당하거나 지고만은 못사는 강인한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남편의 내연녀라 생각했던 모란에게 분노가 가득 담긴 발차기를 선사하거나, 돌아온 남편 철희(이순재 분)에게 소금을 뿌리며 “잡귀야 물러가라”고 소리를 치는 모습에 순옥만의 강단이 담겨있다. 그토록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캐릭터가 선보이는 특별한 용서와 이해는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이를 연기한 김혜자의 연기력 역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힘을 뺀, 너무나 자연스럽고 설득력있는 연기는 그에게 ‘갓혜자’라는 별명을 붙여주는데 아쉬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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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여자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