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증명해보였다. 명품 드라마를 만드는 건 많은 부분 배우들의 몫이라고. 명품 배우라는 수식어는 그냥 그렇게 갖다 붙인 의례적인 이름표가 아니라고.
지난 14일 24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극본 김인영 연출 유현기 한상우)는 치밀한 대본과 따뜻한 연출,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진 수작이었다. 그 중에서도 돋보였던 것은 캐릭터 하나하나를 살려놓은 김인영 작가의 필력, 그리고 대본 속 인물들을 실제 살아있는 인물들로 재창조해낸 배우들의 재능과 시너지였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삼청동과 북촌을 배경으로, 한 집에 살고 있는 안국동 강선생(김혜자 분) 3대가 맞닥뜨린 인생의 고난과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수목드라마로는 이례적인, 가족드라마라는 장르가 신선함을 줬다.
연기파 ‘어벤져스’라 해도 괜찮을 정도로 ‘믿고 보는’ 연기자들이 ‘총출동’한 것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었다. 오랜만에 지상파 드라마로 돌아온 김혜자부터 장미희, 채시라, 도지원, 이하나, 서이숙, 김혜은, 이미도, 이순재, 손창민, 박혁권, 김지석, 송재림 등의 배우들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세계 속에서 각각 자신들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예쁜 그림을 만들어냈다.
명품 연기의 선두를 이끈 것은 역시 김혜자였다. 안국동 강선생 역을 만든 김혜자는 억척스럽게 두 딸을 키우며 살아온, 그러면서도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여인의 캐릭터를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로 그려냈다. 또 그는 방송 초반 남편 철희(이순재 분)의 세컨드(?) 모란(장미희 분)를 향해 날린 강렬한 발차기(일명 ‘혜자킥’)로 충격을 주는가하면, 모란과 함께 만들었던 티격태격 ‘워맨스’ 연기로 순옥만이 가진 개성을 세밀하게 표현해내며 드라마를 이끌었다.
김혜자가 방향을 잡았다면, 드라마의 동력이 된 인물은 채시라였다. 채시라는 고등학생 시절 억울한 누명을 쓰고 퇴학을 당한 후, 평생을 열등감과 피해의식에서 살아온 현숙 역을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특히 현숙의 캐릭터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만들어내는 ‘좌충우돌형’의 인물이라 채시라는 그만큼 많은 움직임과 에너지, 감정의 변화 등으로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도지원과 손창민, 이하나와 김지석, 송재림은 각각 서로 다른 세대의 달달한 로맨스를 보여주며 자칫 심심할 수 있는 극에 비타민처럼 활기를 더했다. 중년의 사랑을 보여준 도지원과 손창민은 늦은 나이에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을 순수하게 표현해 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하나, 김지석, 송재림은 ‘쿨’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삼각관계를 각자 자신만의 캐릭터로 잘 표현해 냈다.
악녀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초반 현숙과의 트러블로 악덕 교사의 표본을 보여준 서이숙은 묘하게 연민을 자아내는 연기로 눈길을 끌었다. 또 중·후반 순옥을 배신하며 열등감과 욕망의 끝을 보여준 박총 이미도 역시 분노를 끌어내게 하는 역할을 잘 소화해 많은 이들로 ‘욕’을 먹으며 연기력을 입증 받았다.
이처럼 연기력이 되는 다양한 배우들의 시너지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을 명품 드라마의 반열에 올려놓게 만들었다. 대본 자체도 매력적인 게 분명했지만, 이를 살려낸 배우들의 노력과 하모니는 칭찬을 해줄만 했다. 배우들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착하지 않은 여자들’ 같은 드라마가 또 빛을 보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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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여자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