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히어로 중 남들 부럽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매번 가난하다고 놀림을 받는다. 놀림 받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 동료들의 흥행 역사를 먼발치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누구 이야기인지 아마 짐작했을 것. 바로 스파이더맨 이야기다.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가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마블 영화 사상 처음으로 천만 돌파라는 경사를 맞게 된 지금, 누구보다 '어벤져스2' 천만 돌파를 배 아파할 주인공은 스파이더맨일 듯 싶다.
원래대로라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스파이더맨이지만 판권이라는 조건 앞에 친구들의 천만 관객 동원을 지켜만 봐야 하니, 마블의 경쟁사인 DC도 아니요, 또 다른 히어로들도 아니요, 스파이더맨의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스파이더맨은 원래 마블의 히어로였다. 그럼 왜 그동안 '어벤져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바로 마블이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소니 픽쳐스에 팔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계약과 제작 무산 등을 겪은 스파이더맨은 1999년,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콜롬비아 픽쳐스로 최종 확정되면서 이후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왔다. '스파이더맨'부터 '스파이더맨2', '스파이더맨3', 그리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까지 모든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소니 픽쳐스에서 도맡아 왔다.
판권이 소니에 있는 스파이더맨이기 때문에 그는 먼 발치에서 히어로 친구들이 어벤져스를 결성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섭섭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 국내에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대부분 500만 관객 몰이에 성공하며 흥행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마블이 해도 해도 너무 잘 나가기 시작했다. '어벤져스'의 성공부터 '아이언맨3'가 900만 관객을 동원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어벤져스2'는 천만을 돌파했다. 히어로 영화 사상 처음이다. 할리우드 영화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촬영을 진행했다는 이점도 작용했지만 '어벤져스2'는 어찌 됐든 마블에게 경사를 안겨준 복덩이가 됐다.
이쯤되면 스파이더맨은 뉴욕 어딘가, 거미줄에 매달려 씁쓸한 입맛을 다시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흥행 히어로가 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있을 것. 스파이더맨을 사랑하는 팬들 역시 이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마냥 낙담할 필요만은 없다. 스파이더맨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때문. 소니 픽쳐스와 마블 스튜디오는 스파이더맨을 둘러싼 협약을 체결, 소니 픽쳐스에서 제작하는 스파이더맨 단독 시리즈에 마블 측이 지원을 하며 마블 영화에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등장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덕분에 스파이더맨이 '어벤져스2'로 천만을 맛본 동료 히어로들 못지 않은 흥행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어벤져스2'로 달궈진 국내 분위기가 오는 2016년 개봉하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로 다시 한 번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이 마블에 처음 등장하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가 천만 관객을 넘는 성공을 거둔다면 그간 서러웠던 뉴욕 뒷골목 신세는 깨끗하게 씻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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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