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신생아' 김남길은 장난꾸러기였다. 제 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영화 '무뢰한'(감독 오승욱, 제작 사나이픽쳐스)으로 칸을 찾은 그는 시종일관 전도연 곁에서 유쾌한 멘트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칸영화제를 방문한 소감을 물으니 "처음엔 외국에서 열리는 부산영화제라고 생각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작품 속 그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무뢰한'은 살인자의 여자와 그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로, 김남길은 살인자의 여자에게 흔들리는 형사 정재곤 역을 맡아 살인자의 여자 김혜경 역의 전도연과 호흡을 맞췄다. 16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 인터내셔널 빌리지 인근 영화진흥위원회(KOFIC) 부스에서 진행된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를 통해 김남길은 '무뢰한'과 전도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털어놨다.
이하 일문일답.
-지난 15일 공식상영을 진행했다. 소감이 어떤가.
"칸이란 세계적인 영화인들이 모인 축제에 왔다는 것이 즐거웠다. 큰 스크린으로 두 번째 완성된 작품을 보니까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느껴졌다. 부족한 부분이 더 적나라하게 다가왔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편안한 움직임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더 격하게 움직일 걸 그랬나 싶은 부분이 있었다. (전)도연누나랑 한번 연기를 하고 나면 자신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더라. 부산영화제 때 (송)강호형이랑 (황)정민형이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해준 적 있다. 정민형말이 '나는 잘한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느끼게 해주는 여배우'라고 했다.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전도연은 '마성의 여자'다. (웃음)"
-'무뢰한'에 처음 출연을 결심했을 때 칸에 올 줄 알았나.
"도연누나랑 한다고 해서 기대했다. (웃음) 상대역이 전도연이니까 칸에 대한 바람이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칸영화제에 가기 위한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니까 크게 의식하지 않았는데 진짜 올 줄 몰랐다. 도연누나는 경쟁 부문도 오고, 심사도 했지만 나는 처음이다. 사람들이 칸영화제에 간다고 축하해줄 때 '외국에서 열리는 부산영화제 아니냐'고 반응했다. '편안하게 생각해야지'란 마음이었다. 이제 보니 사람들이 왜 좋은 영화를 만들어서 칸에 오고 싶어하는지 알겠더라. 도연누나도 연기를 오래했는데, 칸에서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연기적인 부분에서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 '칸 신생아'라고 칭했는데, 이후 행보에 영향을 줄 것 같나.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칸에 왔다 간다고 해서 연기적인 부분에서 업그레이드 되는 건 아니다. 지금처럼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무뢰한'을 촬영할 때 주변에서 '상대역이 전도연이니까 밀리지 않게 열심히 하라'고 했는데, 내가 도연누나와 필적할 만한 대상이 된다고 하지 않는다. 도연누나 옆에 서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3박4일 짧은 일정이다. 공식 행사 외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구경하고 싶어서 길거리를 마냥 돌아다녔다. 진짜 좋더라. 오기 전에 '부산영화제인데 외국에서 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는데 그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밤 거리를 거닐어 보고 싶다. 아시아에서 열린 영화제는 몇 번 가봤지만, 이런 느낌까지는 받지 못했다. 여기 와서 다른 영화제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그중 정재곤과 김혜경의 관계는 일반적인 사랑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김혜경에 대한 정재곤의 감정은 무엇이었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의 성향과 방식은 다 다르지 않나. 그래서 어느 정도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사람마다 사랑이라고 부르는 크기나 값어치가 다르다. 도연누나의 말대로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무뢰한'은 사랑이라고 하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와닿는 사랑을 담았다. 그래서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여지는 포장들을 뜯어보면 그런 삶과 이야기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형사와 술집 여성의 사랑이 그렇게 그려지기는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상대 배우로서 전도연은 어떤 사람인가.
"연기에 대해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 도연누나가 내 상태를 정확히 보고 불러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도연누나랑 연기하면서 정말 좋았던 것은 연기의 앙상블이라는 걸 느낀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부분이지만, 도연누나는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말해준다. 현장에서 편히 연기할 수 있게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부분들이 그렇다. '칸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있는 여배우여서가 아니라, 도연누나랑 해보면서 도연누나만큼 '참 좋다'라는 느낌을 준 배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도연누나랑 함께 연기를 하면, 집에 갈때 자꾸 생각난다. 극중 김혜경과 정재곤이 같이 잡채를 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도연누나와 함께 찍고 나니까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좋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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