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 "'칸의 여왕', 가능성 열어주는 고마운 수식어" [제68회 칸영화제]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5.17 06: 40

벌써 네 번 째 인연이다. 배우 전도연은 제 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영화 '무뢰한'(감독 오승욱, 제작 사나이픽쳐스, 개봉 27일)으로 칸을 찾았다. 2007년 '밀양'으로 한국 배우 최초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2012년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하녀'로 다시 레드카펫을 밟았다. 지난해에는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그는 칸영화제에 대해 "늘 설레고 힘들다"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뢰한'은 살인자의 여자와 그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도연이 극중 살인자의 여자 김혜경 역을, 김남길이 살인자의 여자에게 흔들리는 형사 정재곤 역을 맡았다. 16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 인터내셔널 빌리지 인근 영화진흥위원회(KOFIC) 부스에서 진행된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를 통해 '무뢰한'과 칸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들어봤다.
이하 일문일답.

-지난 15일 '무뢰한' 공식상영이 있었다. 
"이번에는 편한 마음으로 올 줄 알았다. 그동안 왔던 것 중에서 부담이 가장 컸다. 작품이 가장 중요한데, '무뢰한'이 지닌 한국적인 정서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까 걱정됐다."
-상영이 끝나고 외국 팬들의 사인 요청 세례가 쏟아지더라.
"'무뢰한'도 그렇지만, 예전 작품들을 외신 기자나 해외 팬들이 알아봐주면 한편으로 뿌듯하다. 이 안에서 나는 작은 존재라고 느끼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왔는데, 무엇이 더 어렵나.
"평가를 하는 것도, 평가를 받는 것도 어렵다. 양쪽 다 같은 것 같다."
-'무뢰한'으로 칸에 올 것을 기대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감독님을 만났는데 너무 어색해 하더라. 신인감독보다 못하면 어떻게 하나 했다. '킬리만자로' 이후 15년 만에 돌아온 영화 현장이라 모두 신기해 하셨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있으니까 생각한 바를 밀고 갔셨다. 그 모습에 믿음이 갔다. 약간의 촌스러움이 곧 '무뢰한'이자, 감독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칸에 올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상대역 김남길은 재빨리 "(전)도연 누나랑 한다고 해서 기대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 속에서 짐짓 무거운 연기를 보여준 김남길이었지만, 전도연 곁에서는 장난꾸러기 남동생 같았다.
"칸은 아무나 오는 게 아니다. 지난해 심사위원을 하면서 각국의 최고의 작품들을 봤다. 자극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나름 작품을 찍을 때 집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반성했다. 이렇게 다시 오게 될 줄 몰랐다."
-'무뢰한' 칸 진출이 확정됐을 때는 어땠나.
"칸은 세계적인 영화제이며, 만만하지 않은 곳이다. 감독님이 가장 큰 축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가슴이 아픈 부분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이게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다고 했다. 감독님 스스로 촬영하면서 의심하게 되니까 '내가 또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말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 칸 결정이 됐을 때 감독님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
-'칸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무겁지는 않은가.
"예전에는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극복하고 싶었다. 다른 작품들로 그 위에 서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칸의 여왕'이라 불러주시지만, 이곳에 오면 내가 어떤 배우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자극을 받고 돌아가는데, '칸의 여왕'이란 수식어는 내가 좋은 배우로 거듭날 수 있게 도와주는 수식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떨쳐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냥 같이 가는, 내가 어떤 배우가 될지 계속 따라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수식어라고 생각한다."
-이제 칸에 오면 감흥이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왜 그러시냐(웃음) 올 때마다 똑같다. 부담스럽고 설렌다. 오는 길이 고통스럽지만, 햇살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에도 그렇겠지만, 내가 또 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해 심사위원을 하면서 칸이 마지막이란 생각을 했다. 이 시간을 마음껏 즐기겠다고 생각했다. 또 오면 좋겠지만, 늘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을 한다. 칸에 와서 컵라면을 제일 많이 먹는다. 원래 라면을 좋아하는데, 지난해 컵라면에 질려서 갔다. 여가를 보낼 시간은 사실상 많지 않다."
-뒤를 이을 후배로는 누가 있다고 생각하나.
 
"좋은 친구들이 많은데, 가까이 본 친구가 김고은이다. 참 예뻐 보인다. 선택하는 작품이나, 보여지는 것보다 내면의 것을 끄집어 내고 하는 욕심이 있어서 그런 노력들이 예뻐 보이더라. 좋은 배우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밀양'이 여전히 최고의 연기인가.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상을 받았기 때문에 최고의 연기처럼 보여질 수 있겠지만, 계속 좋은 작품을 하면서 작품에 묻어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최고라고 하면 그게 나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칭찬처럼 들리지 않는다."
-김남길은 어떤 배우인가.
"되게 신기하다. 김남길이란 사람을 사석에서도 본 적이 없다. '무뢰한'을 통해 봤는데, 나쁜 남자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기대를 했는데 첫 만남에서 모든 게 깨졌다. 남자다운 것 보다 동생 같다. 동네에서 공차면서 뛰어노는 아이 같다.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정재곤은 삶의 무게에 눌려 있는 사람인데 김남길이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근데 확실히 영리하고 집중력도 좋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있다. (웃음) 감독님과 이야기를 할 때 김혜경은 삶에 대한 의욕이 없는 여자라고 했다. 그 여자는 그 세상을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김남길과 연기를 하면서 희망을 가진 여자가 됐다. 그렇게 김혜경을 변신시켜 준 사람이 김남길이다."
-작품을 선택할 때 영화제를 염두에 두나.
"그렇게 하기에는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 여배우에게 들어오는 작품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전도연에게 들어오는 작품의 수가 적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남자배우 중심 충무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가 잘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작품들에 대한 자신감이 굉장히 강하다. 그런 작품들이 잘되면 가능성이 열린다. 여배우가 한 작품들도 사람들이 많이 본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 티켓 파워에 대한 선입견이 있지 않나. 욕심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잘 헤쳐나가고 싶다. 나로 인해 상황이 크게 달라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노력은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뢰한'이 꼭 잘됐으면 좋겠다."
-'무뢰한'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협녀'를 찍고, '남과 여'가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남과 여'를 기다리는 동안 '무뢰한'이 들어왔다. 시나리오가 굉장히 좋았는데, 다 무거운 이야기라 쉽게 '하고 싶어'라고 할 영화는 아니었다. 조금 망설이기는 했다. '남과 여'도 있고 해서 여러가지를 많이 고려해서 선택해야 했다."
-칸을 자주 찾았는데, 해외 감독의 러브콜은 없었나.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왜 너 영어 안배우니'라고 하더라. (웃음) 내가 게으르다는 마음이 들었다. '꼭 해야지' 하고 한국으로 왔더니 너무 바쁘더라. 영어 수업 두 번 받고 그만뒀다. 좋은 감독님과의 작업은 좋지만, 그전에 스스로 극복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다."
-극중 김혜경은 희생자일까. 
"사랑을 하면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더 상처 받지 않나. 정재곤에게 어쩌면 김혜경은 무뢰한일 수 있다. 겉으론 그가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 있는 남자들 보다 훨씬 더 포용력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다 품고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정재곤에 대한 김혜경의 감정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온전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다. 보통 멜로 영화 속 사랑은 굉장히 명확하다. '무뢰한' 속 주인공들의 관계를 무슨 사랑이야 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온몸으로 표현한다." 
-이번 드레스 코드는 무채색이다. 공식상영, 포토콜, 인터뷰에서 검은색이나 회색 의상을 소화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칸에 오는 일정이 갑작스러워 준비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여기 와서 급조했다. 콘셉트는 시크였다. 깔끔하고 단정한 게 좋았다. '무뢰한'이란 작품으로 왔기 때문에 김혜경처럼 절제되고 시크한 이미지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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