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돌아온 감독은 할 말이 많았다. 그럴만도 했다. 10년 전부터 '방구석에 있던 시나리오'가 영화로 완성됐고, 심지어 제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그는 "신날 수밖에 없다"며 유쾌한 입담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주도했다. 바로 27일 개봉하는 영화 '무뢰한'(제작 사나이픽쳐스)의 오승욱 감독이 그 주인공이었다.
'무뢰한'은 살인자의 여자 김혜경(전도연)과 그를 쫓는 형사 정재곤(김남길)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일반적인 멜로와 다르다. 시쳇말로 '사랑 인듯 사랑 아닌' 감정으로 그려진다. 16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 인터내셔널 빌리지 인근 영화진흥위원회(KOFIC) 부스에서 진행된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를 통해 '무뢰한'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무뢰한'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칸영화제와 개봉 중 무엇이 더 신경쓰이나.
"개봉이 더 신경쓰인다. 당연한 일이다. 개봉이 더 무섭다. 10만을 넘겨본 감독의 비애가 있다."
-15년 만에 돌아왔는데 현장이 많이 달라졌나.
"바보란 생각이 들었다. 전도연에게 많이 혼났다. '아직도 적응 못하느냐'고. 감이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오케이(OK)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더라. 물어보면 '당신이 시나리오 쓰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하더라. 시나리오 쓴다고 다 아나. 영화에 대한 열정이나 그런 것들은 여전히 똑같다. 그 부분은 다르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비슷한 현장인데 나만 바보였다. 20회차까지는 내가 지금 여기서 '감독 코스프레' 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빨리 감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영화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지난 15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쓴 시나리오를 많은 분들이 싫어하는 구나 싶었다. '무뢰한'을 세 번째 거절당했을 때, 나는 이런 것밖에 못쓰는데 이거 말고 다른 걸 어떻게 쓰지라는 생각을 했다. 재능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뢰한'을 처음 구상한 것은 언제인가.
'무뢰한'을 처음 구상한 건 2005년 정도였다. 처음 생각은 단순했다. '킬리만자로'는 많은 사람이 나오는 시나리오였다. 원맨 주인공 영화를 만들었으면 했다. 결말만 정해놓은 상태였다. 투박하고 거칠고 자기의 룰만 있는 남자가 주인공인데, 그런 남자를 표현하려니까 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자를 잘 모른다. 시나리오만 쓰면 타박받는 게 여성 캐릭터다. 그러다 보니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진 두려움과 죄의식을 표현해야 비로소 남성이 표현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생겼다. 재능이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의 일들을 가져왔다. 직접 룸싸롱을 갈 수 없어서 룸싸롱을 자주 다닌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취재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직업여성들이 때에 따라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더라. 극중 대사들 중에는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등 여성 작가의 책들을 봤고, 여성PD를 만나서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김혜경 캐릭터를 만들었다. 전도연이 들어오면서 경직된 부분들에 생명력이 생겼다. 현장에서 그런 전도연을 보면서 즐거웠다."
-전도연이 새롭게 색깔을 입힌 캐릭터를 보는 기분은 어땠나.
"최고의 배우와 일을 하는데, 그 이야기가 배우로 인해 좀 더 좋아지는데 왜 마다하겠나. 처음부터 전도연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배우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자살골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를 생각하고 쓰면 틀에 얽혀버리더라."
-정재곤 역에는 이정재가 먼저 캐스팅 됐다가 부상으로 하차했다. 당황스러웠겠다.
"이정재가 못한다고 했을 때, 전도연이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라고 문자를 보내줬다. 그리고 전도연이 술을 잔뜩 사들고 사무실에 와서 같이 한국 남자배우 리스트를 뽑았다. 새벽까지 작업이 이어졌다. 그때부터 김남길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는데, 점점 김남길의 순위가 올라왔다. 그래서 3일 동안 김남길의 출연작을 살펴봤다. 시나리오를 보냈을 때 김남길이 하고 싶은 의지를 보여주더라. 감독으로 가장 좋은 건, 배우가 색다른 분석을 보여줄 때다. 전도연은 거의 '레전드' 급이었다. 전도연에게는 혼났다. 시나리오 쓴 사람이 어떻게 나보다 모르냐고 하더라. (웃음) 김남길도 훌륭했다. 드라마 '상어'를 보면서 이 배우와 일을 하면 좋겠다는 호승심이 생기더라. 참 좋은 얼굴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시나리오를 읽은 분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역동적이고 남성미 넘치는 남자 주인공을 생각하더라. 내 머리 속에는 댄디한 남자였다. 김남길은 소년 같은 모습부터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시나리오 분석이 마음에 쏙 들었다. 첫 촬영할 때 김남길을 모니터로 보는데, 당당한 걸음이 아니라 결핍이 있는 사내더라. 그게 참 좋았다. 특히 확신을 가진 때는 차로 사람을 밀어내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옆 얼굴과 앞 얼굴이 참 괜찮더라."
-전도연의 분석은 '레전드' 급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었나.
"후반부 남자가 왜 여자에게 갈까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쪽팔려서 가는 거예요'라고 전도연이 말하더라.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재곤은 남성으로서 형사로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남자인데, 전도연이 말한 '쪽팔림'이란 단어에 무릎을 쳤다."
-전작인 '킬리만자로'와 닮아 있다.
"'킬리만자로' 속 박신양이 김남길, 안성기가 전도연이다. 영화를 얼마나 더 만들지 모르겠지만, 결국 감독은 한 이야기를 계속 가지고 가는 것 같다. 결국 '죄'에 대한 이야기다. '무뢰한' 쓰면서 그 생각이 강화됐다. 어렸을 때부터 범죄 영화만 좋아했다. 할아버지가 목사셨다. 집안에서 매일 죄에 대한 이야기하고 회개를 했다. 어렸을 때 가장 기억에 나는 것이 여름성경학교였는데, 전도사 분이 죄의 공포를 이야기 해주셨다. 돌이켜 봐서 그런 것이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김혜경의 남자친구이자 살인자 박준길 역의 박성웅도 인상적이다.
"박준길 역이 원래는 굉장히 작았다. 하지만 박성웅이 들어오면서 액션 신이 생기고 비중이 늘었다. 박성웅이 그의 몸을 보면서 두 남자의 격한 액션에 욕심이 났다. 레슬링을 워낙 좋아해서 레슬링 액션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와 맞지 않아서 뺐다. 김남길과 박성웅은 정말 액션을 잘하는 배우들이다. 워낙 연습을 안해서 PD가 걱정을 하더라. 막상 촬영할 때 되니까 집중력이 굉장히 좋았다."
-전도연을 계속 '도연느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웃음)
"김남길이 만든 말이다. 나에게는 두 명의 '느님'이 있다. '도연느님' 전도연과 '유느님' 유재석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없었으면 지난 15년 동안 힘들었을 것 같다. 그만큼 '무한도전'의 광팬이다. '무한도전'을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전도연이 '어휴, 남자들이란'이라고 하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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