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음의 홍석천,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지난 17일 방송된 MBC '복면가왕'은 우리 안에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던 편견에 멋지게 하이킥을 날려주는 방송이었다.
작게는 '홍석천은 늘 고음을 내지르며 까불 것이다'라는, 크게는 '동성애자와 중후한 저음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까지, 어찌됐든 홍석천의 무대는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던 무언가를 깨뜨리는 역할을 했다.
그가 선택한 닉네임은 김사장. 중저음을 내는 김사장이라는 캐릭터는 최근 활동이 뜸한 왕년의 스타들을 연상케 했고, 실제 스타 판정단의 평가도 비슷했다. 심신이 유력할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은 가운데, 김사장이 "저기에 내가 밥 사준 사람이 있다"는 발언을 해도 홍석천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실제 그럴만 했다. 상암동 호루라기라는 닉네임을 가진 다른 출연자와 무대에 오른 그는 더블루의 '너만을 느끼며'를 부르며 중저음을 맡았다. 남성적인 목소리에 남성적인 제스쳐, 로커 출신 심신이 제시될만도 했다.
경연에서 진 후 솔로곡 '첫인상'을 부를때만해도 그의 정체를 눈치채기 쉽지 않았던 상황. 그래서 그가 가면을 벗었을 때 반응은 '역대급'이었다.
그가 노래를 끝낸 후 다시 고음으로 "미워죽겠어"를 하고 나서야, '진짜 홍석천이네'라고 했을 정도.
홍석천은 "편견에 부딪혀 좌절한 분이 많은데 내가 그 중 1번 2번은 될거다. 이렇게 편견을 갖고 보지 않으면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복면가왕'의 의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이 방송의 핵심이자 기획의도 아니었을까.
이날 방송에서는 배다해, 걸스데이 소진, 장미여관의 육중완도 편견 깨기에 나섰다. 배다해는 '오페라의 유령'을 부르며 아름다운 고음을 선보였고, 소진은 그동안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매력적인 음색을 재발견시켰다. 육중완은 "댓글들이 뚱뚱한 아저씨, 더러운 아저씨, 그래서 나는 노래하는 아저씨라고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객관적인 노래 실력 자체는 아주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면 속 얼굴의 주인공이 누군지 추적하는 과정도 부차적인 재미일 뿐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력, 캐릭터, 외모를 보지않고 목소리에만 귀기울이는 경험을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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