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 이것이 달랐다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5.05.18 10: 46

* 스포일러 있습니다
[OSEN=이혜린의 무비라떼] "내가 미친 건지, 나만 빼고 미친건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느끼는 고립감이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적응 못하는 내가 미친건지, 내가 적응 못할 만큼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이 미친건지,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왕 미친 거, 더 세게 미칠 수록 이야기는 강력해진다. 물과 기름을 빼앗기 위해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해치는 22세기는 어떨까. 물을 독점한 독재자가 사람들을 소유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세계. 딱히 비유와 상징이라고 보기도 어려울만큼 직설적인 '요즘' 얘기일 수 있겠다.
현재의 부조리를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풀어내는 영화는 무척이나 많았지만,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그 중에서도 매우 빼어나고, 또 다른 작품이었다.
핵전쟁 후 인류가 물이나 기름을 두고 살생을 벌이거나, 독재자로부터 탈출을 감행하는 스토리는 그리 낯선 게 아니지만, 이를 풀어내는 '매드맥스'의 솜씨는 과연 '원조'다웠다. 일흔살 조지 밀러 감독이 30년만에 메가폰을 잡았다거나, 여신 샤를리즈 테론이 한쪽 팔 없는 삭발 여인으로 파격변신했다거나 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외부 요인이 전혀 감지되지 않을만큼, '매드맥스' 속 세계는 그 자체로 강력하고 매혹적이었다.
가장 다른 건 역시나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배경이다. 도무지 쉴 틈이 없는 이 영화는 삭막한 사막을 잠시도 벗어나지 않는다. 자동차는 계속해서 뒤집히고, 임모탄은 시끄럽게 따라온다. 모래 바람은 거세서 극장에 편히 앉은 내 눈에도 모래가 들어오는 것 같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은 어처구니 없게도 진짜 '끝'이 없는 걸로 판명난다. 녹색의 땅 따위 없다.
주인공들은 중간에 잠깐 오토바이로 갈아타는 것 말고는 계속해서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이게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것도 특이하다. 해괴망측한 모양새를 한 자동차들이 계속해서 나오긴 하지만 결국 자동차. 다른 이동수단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자동차끼리 속도를 경쟁하고 깔아뭉개고 폭발시켜버리는데 웬만한 우주 전쟁보다 현란하다. 가시를 두른 자동차나, 장대에 매달린 사람들 등 독특한 비주얼도 한 몫한다.
여전사 퓨리오사 캐릭터도 매우 탐난다. 이제 하도 말해서 촌스러운 지적으로 보일 정도지만, 대부분의 영화가 여배우의 존재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꽃' 아니면 '뱀'으로만 그려온데 반해 이 영화는 퓨리오사를 여전사이면서도 기존 여전사와 다른 면모를 확실히 살리며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어색하게 근육이 울퉁불퉁하지도 않은 퓨리오사는 여자들을 '소유'하는 임모탄의 행태에 반기를 들고 탈출을 강행한다. 딱히 친해보이지도 않지만, 여성간의 유대감이 찐득한 이 여자는 묵묵히 여자들을 탈출시키는데 주력하면서 크게 생색을 내지도 않는다. 삐쩍 마른 섹시한 포로들도 나름 행동하고 생각하며 비주얼 그 이상의 몫을 해낸다.
우연히 이들 탈출에 동행하게 된 맥스가 이 여리여리한 여성들과 눈 맞는 게 아닌 퓨리오사와 특별한 교감을 이루는 것도 특이하다. 러브라인이라도 보기 힘든, 쿨한 동지애인데 각자 서로의 미션(살아남기)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우정을 쌓아간다는 점이 그 어떤 멜로영화보다 더 로맨틱하다. 각박한 시대, 진정한 연애는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탈출구를 찾아헤매는 우리에게 매우 인상적이다. 오토바이에 기름 가득 채우고 소금사막을 건널 수도 있었던 이들은, 그래봐야 소금 사막이라고 결론낸다. 희망의 땅을 찾아내서 옹기종기 살지 않고(어차피 그런 땅도 없다), 목숨 걸고 되돌아가 임모탄을 박살내자는 결론. 영화 상으로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현실에선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난데없이 희망의 땅이 나와도 화난다.
오늘도 소금 사막 어딘가를 방황하다 극장을 찾은 이들이 아주 잠시나마 주먹을 불끈 쥐고 신이 났다면, '매드맥스'의 역할은 충분할 것이다. 충분히 다르고 매력적이었다. 그 다음은, 관객의 몫이다.
rinny@osen.co.kr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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