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원 감독은 해외 영화제 단골손님이다. 지난 2012년 단편 '순환선'으로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카날플뤼스상을, 2013년 '명왕성'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 언급상을 수상했다. 이번에는 신작 '마돈나'이 제 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면서, 한국 여성감독 최초로 칸에 2회 입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마돈나'는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가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고, 그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비밀을 그린 영화다. 서영희, 권소현, 김영민, 변요한 등이 출연한다. 신수원 감독에게는 여성이 주인공인 첫 영화다. 6월 25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오는 20일 오전(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칸 드뷔시 극장에서의 공식상영으로 최초로 베일을 벗는다.
18일 오후 프랑스 칸 인터내셔널 빌리지 인근 영화진흥위원회(KOFIC) 부스에서 진행된 신수원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마돈나'를 미리 만나봤다.
-3년 만에 칸을 다시 찾았다.
"얼떨떨하다. 2012년 비평가 주간 초청 당시 작품을 출품하고 어느 날 아침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다 알았다. 떨어진 줄 알았는데 축하한다고 와서 깜짝 놀랐다. 이번에 또 부를 줄 몰랐다. 새벽에 배급사에서 축하한다고 전화를 줬다. 공식발표가 나기 3일 전부터 마음을 비웠다. 영화를 만든 것으로 만족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됐다는 전화를 받고 그것만으로 긴장이 풀리면서 행복해졌다. 지난 2012년에 왔을 때는 아픈 상태여서 공식 일정 외에는 숙소에 누워만 있었다. 이번에는 꼭 놀자는 마음이다."
-이번 영화는 스릴러라는 장르적인 성격이 강해 보인다.
"스릴러는 아니다. 항상 듣는 이야기가 있다. '장르의 삑사리'라고 하더라.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다만 미스터리의 요소를 가지고 출발하는 걸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명화극장'을 즐겨봤는데, 그 시절 장르영화들이지 않나. 그것이 익숙해 시나리오 쓸 때 화법도 그렇게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장르를 완전히 따르는 것은 아니다."
-전작들이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작품을 꾸준히 만들려면 흥행이 중요한 충무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예산이 적기 때문에 가능하다. 제작비 20억이 넘는 상업영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투자사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상업영화 시나리오 쓰다가 엎어진 경험이 있어서, 그런 데 대한 두려움이 있다. '명왕성'은 4억으로 찍었다. 그 돈으로는 스태프 구하기도 어렵고, 회차도 적어야 한다. 일반 상업영화가 50회차 이상이지만, 4억을 가지고는 30회차 이하로 찍어야 한다. 주변에서 상업영화로 풀어보라고 조언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원래 톤이 무너지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산수벤처스와 리틀빅픽처스 측에서 '마돈나' 시나리오를 좋게 봐주셨다. 이 영화는 4억 미만으로 찍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30호차 이상으로 가야하는데, 기회가 열렸다. 비슷한 시기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 스태프 구하기가 힘든 점은 있었다. 매번 상업영화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스태프들에게 떳떳하게 돈을 주고 싶고, 예산이 적으면 표현에 한계가 있다. '마돈나'에 VIP 병동이 나오는데, 예산상 세트가 불가능해 호텔을 싼 값에 빌려 찍었다. 하지만 내가 상업영화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하지만 저예산이든 고예산이든 중요한 건 시나리오다. 나도 믿는 게 있어야 배우들을 통제할 수 있다. 시나리오에 자신이 없으면 끌려 갈 수 있다. '마돈나' 역시 시나리오에 대한 확신이 생긴 이후 움직였다. 처음엔 시나리오가 어떤 대목에서 막혀 냅둔 상태였다. 예상치 못하게 MBC 다큐멘터리 '엄마의 꿈' 연출 제안이 들어왔고, 그 작업 이후 시나리오를 다시 보니까 수정 방향이 생각났다."
- 어떤 대목이 발목을 잡았던 건가.
"미혼모와 관련된 대목이었다. '마돈나'는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축을 차지한다. '엄마의 꿈'이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였고, 사전 취재를 하면서 미혼모들이 아이에 대해 보여준 감정들이나 모성을 이해하게 됐다. 아이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크더라. 내가 쓴 시나리오이지만, 그제야 영화 속 감정들에 동의가 됐다."
-제목은 왜 '마돈나'인가.
"나에게 마돈나는 육감적인 여성을 떠올린다. 주인공 미나(권소현)가 다소 뚱뚱한 설정인데, 빈정거리는 뜻에서 사람들이 그를 마돈나라고 부른다. 알고 보니 마돈나에는 성모 마리아라는 뜻도 있더라. 그런 상징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팝가수 마돈나나 성모 마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기독교적인 요소는 나오지 않는다."
- 서영희가 주인공 해림 역을 맡았다. 어떻게 합류했나.
"'김복남 살인 사건'을 인상 깊게 봤다. 고려해두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 했다. 고마웠다. 미나가 역동적인 인물이라면, 해림은 관찰자와 같은 인물이다. 서영희씨가 그러더라. 해림은 질문을 하고 답을 기다리고 응시하는 역할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힘들다고 하더라. 그게 맞다. 시나리오 상에서 캐릭터에게 강한 설정이 부여되어 있으면 연기하기 쉬운데, 해림은 그렇지 않다. 초반에 영희씨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영희씨가 굉장히 말랐는데, 거기서 살을 더 빼달라고 부탁했다. 피폐해 보였으면 했다. 각종 일을 많이 겪어서 웬만한 일에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길 바랐다.영희씨에게 고마운 것은 어떻게 보면 연기하기 어려운 역을 해준다고 한 것이 고마웠다. 배우로서 드러날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은데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다고 한다고 했다. 또 촬영하면서 배우들 일정이 엉망이 됐는데, 영희씨가 많이 양보해 줬다."
-'마돈나'는 어떤 영화인가.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 여자의 일생이 타인의 이해관계에 의해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자라는 게 루저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이 많은데 그 와중에 여자들이 불리한 위치에 있다. 나 역시 내 일상이 어느 순간 무너지면 길거리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여자 노숙자들이 많이 눈에 들어오더라. 동정심과 함께 내 일상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예전에 여성 액션 영화를 준비한 적이 있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여성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굳이 여자 이야기를 고집할 생각은 없다."
-중학교 역사 교사라는 이력이 독특하다. 후회한 적은 없나.
"없다. 물론 지금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지 모른다.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후에 대학교 친구들과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 한 친구가 '왜 만날 주목만 받고 돈은 안 버냐'고 농담을 했다. (웃음) 30대 중반에 그만뒀는데, 그때 그만두길 잘했다. 물론 생계는 막막했다. 영화라는 건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더 늦었으면 사표를 못 냈을 거다. 성격상 교사 생활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을 거다. 그때도 수업을 할 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했다. 작가를 꿈꿨는데, 영화를 염두에 둔 것도 그때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시나리오 작업과 연출 중 무엇이 더 힘든가.
"쓰는 게 더 힘들다. 시나리오는 안 풀리면 둬야 한다. 아이디어 생각나서 쓸 때는 행복하지만 그렇게 신나게 쓰고 남들에게 보여줬는데 재미없다고 하면 우울하다. 현장은 크랭크인하면 어떻게 하든 돌아간다.
-그렇게 영화를 시작한 게 15년 전이다. 힘든 날도 있었을 텐데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완벽한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는 욕심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영화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공개하면 다음에는 이 부분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평이든 호평이든 다 도움이 된다.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건 마약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인들은 중독자 같다. (웃음) 완성된 영화를 스크린으로 볼 때 가장 행복하다."
-그렇다면 이번 칸에서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는 것인데, 관객 반응이 기대되나.
"관객들이 중간에 나가지만 않으면 좋겠다. 불편한 장면도 있을 것이다. '명왕성' 때만 해도 유머가 있었는데, '마돈나'는 유머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스태프를 구할 때 시나리오가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말한 분도 있었다. 미나 역을 캐스팅할 때도 어려움이 있었다. 살을 다소 찌워야 했고, 미나가 겪는 일들이 극단적이라고 하더라."
-차기작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써놓은 게 있는데 고민이다. '블루 선셋'이란 제목인데 시나리오를 좀 더 손봐야 한다. 결정을 못하고 있다. 일단 예산이 지금 수준에서 더 올라가야 한다. 그것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멜로다. 와이너리 이야기로, 호주 로케이션이 필요하다."
j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