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통신] 김우택 대표 “NEW가 좌파? 너무 후진 발상 아닌가” 울분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5.19 08: 29

[OSEN=칸(프랑스), 김범석의 사이드미러] 68회 칸 영화제를 찾은 투자배급사 NEW의 김우택 총괄 대표를 마주한 건 개막 닷새째인 지난 17일 저녁. 팔레 드 페스티발에서 5분 떨어진 크로와제 거리의 한 중식당에서였다. 이번 영화제에 가장 많은 인원을 대동하고 와 이곳 영화인들 사이에서 어벤져스 급이라는 부러움 섞인 소문이 돌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1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식당에 모여 있었다.
유머러스한 화법과 호탕한 웃음이 트레이드마크인 김우택 대표는 직원들을 소개하며 “사실 이번 출장에 관광파와 워킹파가 반반 섞여 있다”고 너스레를 떤 뒤 “관광파는 내일 서둘러 귀국하고 부가판권 자회사인 판다의 워킹파들이 폐막 직전까지 남아 업무를 볼 것”이라고 조크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동안 연월차 한번 제대로 못 쓰고 주말마다 고생한 팀장들을 위해 마련한 포상 휴가 성격의 출장을 반어법으로 돌려 표현한 것이다.
김 대표는 칭타오 맥주를 잔 대신 병째 마시자고 제안한 뒤 “오는 6월 10일 개봉하는 연평해전도 많이 기대해 달라”며 건배사를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시나리오를 리모델링 수준이 아닌 재건축에 가깝게 뜯어 고쳤고, 최근 편집본을 봤는데 마음 고생을 보상받을 만큼 상업적 완성도를 담아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애국심 고취하는 뻔한 영화가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대목에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NEW를 좌파로 보는 일부 시선에 대한 불편함과 억울함이었다. NEW의 좌파 논란은 이 회사가 송강호 주연 ‘변호인’에 메인 투자를 집행하면서 불거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이 영화가 무서운 속도로 흥행하자 의도와 무관하게 진보 진영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았고, 상대 보수파에선 이런 상황을 못 마땅해 하며 NEW를 좌파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김우택 대표는 “가장 유연하고 창작의 자유가 보장돼야 할 영화가 좌우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갇힌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슬프고 후진 이야기”라며 “우리 회사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연평해전 같은 영화로 물 타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헛웃음이 나왔다”고 말했다. “한때 영화계를 떠날 각오로 제가 겪은 일을 책으로 내볼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다”고 털어놓을 땐 다소 비장한 표정이 스쳤다. 일일이 거론하긴 힘들지만 그간 회사를 경영하며 좌파로 찍혀 어이없는 일을 여럿 겪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세미프로 수준인 70대를 칠 만큼 골프를 즐기고, 최근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도 유치해 안정권에 접어든 서울대 출신 7년차 중견 회사의 오너는 “엄밀히 따지면 저는 지켜야 할 게 많은 기득권자이고 정치 성향도 굳이 따진다면 오른쪽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민중과 지식인’의 저자로 유명한 김 대표의 장인인 한완상 교수 얘기가 나오자 “존경하는 아버님이지만 그 분과 제가 걷는 길은 전혀 다르다”고도 했다.
내친 김에 그에게 NEW가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 ‘판도라’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정부에서 반길 아이템이 아닌데다 ‘변호인’에 이어 모든 투자배급사가 난색을 표한 ‘판도라’에 돈을 댄 속내가 궁금했다. 결정적으로 현재 좌파라는 오해를 받고 있지 않은가.
 “저는 영화로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할 의무도 있고요. 아무리 의미 있고 좋은 기획이라도 일단 상품화해서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제 판단 근거 1호입니다. 변호인이나 판도라도 그런 관점에서 투자한 작품이고요. 관객들의 심장을 뛰게 하고, 더 나아가 영화가 이 사회에 굵직한 물음표까지 던진다면 오히려 적극 장려해야 할 일 아닌가요?”
 김남길 주연 ‘판도라’는 당초 촬영키로 한 부산시와 경남에서 갑자기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촬영 협조 요청을 거절했고, 현재 강원도로 옮겨와 찍고 있는 재난 영화다. MBC 사장과 야당 국회의원 출신인 최문순 도지사가 이런 딱한 사정을 접하고 “강원도로 와서 원 없이 카메라를 돌리라”고 해 큰 고비를 넘겼다.
 김 대표는 “쇼박스 대표 시절에도 많은 영화를 해봤지만 좌우 논리에 휘말린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저는 요즘도 감독, 배우, 작가들과 만나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좋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메가박스의 보이지 않는 지원 사격이 있었지만 NEW 초창기 시절 멀티플렉스 체인이 없어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콘텐츠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좌파 논리는 너무 시대착오적인 후진국 형 발상 같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청량한 바닷바람과 공기,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프랑스 남부 휴양 도시에서 4대 메이저 투자배급사 대표의 고민이 기껏 좌우 논리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일 만큼 우스꽝스러웠다. 이런 편 가르기도 압축 성장에 대한 후유증인 걸까. 하긴 이곳까지 와서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국제영화제가 벌이는 보이콧과 헐뜯기도 혼자 보기 아까운, 3류 코미디의 한 장면이다. 서로 자신들 행사에 상대를 초대하지 않는 ‘앙증맞은’ 힘겨루기 하는 모습을 혹여 다른 나라 영화인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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