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아래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채롭게 담아낸 두 영화가 공교롭게도 동시에 극장에 내걸렸다.
'간신'과 '매드맥스'는 조선시대와 22세기 사막지대로,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배경을 통해 폭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결은 완전히 다른데 의외로 맥이 상통하고 있어 어느 작품이 더 가깝게 소통하는데 성공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난세, '간신'이 되지 않고 버틸 수 있나
미친 사람 자체는 의외로 삶이 단순하다.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책임지지 않고 발 빼버리면 그만. 진짜 삶이 복잡한 건 그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떠받들어야 살길이 열리는 이들이다. '간신'은 이 미친 연산군이 어떻게 '간신'을 만들어내는지를 잘 그려내고, 이 간신들이 자존심과 밥그릇을 놓고 고민하게 되는 순간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주인공 임숭재(주지훈 분)는 연산군과 오랜 기간 우정 아닌 우정을 나눠오면서, 그의 비위를 맞춰 승승장구해온 인물.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조선 미녀 1만명을 징집하는 일도 '열심히' 해낸다. 균열이 생기는 건 자신이 뽑아온 단희(임지연 분)에게 흔들리면서부터. 연산군에게 모든 걸 바치고도 잘살았던 그가 처음으로 '내가 갖고픈 것'이 생기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갈등이 시작되니, 그동안은 별 생각 없이 봐왔던 아버지(천호진 분)의 '간신배 노릇'도 거슬리게 된다.
영화는 연산군의 광기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서(민규동 감독은 실제 일어난 일의 1/10도 담지 않았다고 밝혔다) 멀쩡한 사람도 간신이 될 수밖에 없는 미친 세상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매드맥스'의 서막을 여는 "내가 미친건지, 세상이 미친건지"라는 대사는 바로 이 영화에도 해당된다.
# 미친 세상, 언제까지 소금 사막만 헤맬텐가
'간신'에 연산군이 있다면 '매드맥스'엔 임모탄이 있다. 임모탄은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물을 꽉 틀어쥐고서 독재자로 군림한다. 지하수를 끌어올려 아주 조금씩 맛만 보게 하면서 "물에 중독되진 말라"며 구원자 노릇을 하는 모습은 여느 독재자들의 모습을 갖다붙여도 싱크로율이 꽤 높다.
어차피 핵전쟁으로 다 망해가는 세상,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사라진지 오래다. 임모탄은 여성들을 아이 낳는 기계 취급을 하며 '소유'한다.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분)는 이들 여성을 구출해서 탈출을 강행한다. 그의 탈출기가 이 영화의 주된 내용. 영화는 잠시도 쉬지 않고 쫓고 쫓기고 부서지고 박살난다.
퓨리오사가 이 여성들을 구출하는 건 이 여성들과 친해서도, 여성 권익을 위한 대단한 투쟁을 위해서도 아니다.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이고, 연대다. 생색 한번 내지 않고 꿋꿋하게 할일을 해내는 그의 모습은 과연 액션 블럭버스터 여성 캐릭터의 한 획이라 할만하다.
그는 구원을 찾아서 존재도 하지 않을 땅을 찾는다. 소금 사막을 건너면, 뭐든 어떻게 되든 되겠지라는 생각. 임모탄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생각으로 매마른 소금사막만 해매는 모습은 액션 쾌감에 흥분했던 관객들에게 묵직한 데자뷰를 일으킨다. 맥스(톰 하디 분)의 설득으로 오토바이를 돌려 임모탄에게 진격하는 모습이 짜릿한 건 단지 액션이 기가 막혀서는 아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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