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손현주 등등. 충무로는 유난히도 중년 바람이 거세다. 굳이 중년이 아니더라도 하정우, 강동원, 조인성 등 원숙미를 풍기는 30대 남자배우들이 충무로애는 대거 포진하고 있다. 반면, 20대 남자배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드라마를 제외하고 스크린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거둔 20대 남자배우는 김수현, 김우빈 정도. 말그대로 젊은 피가 부족한 요즘의 충무로다.
때문에 영화 '악의 연대기'가 반갑다. 젊은 피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손현주, 마동석 주연의 영화가 등장하느냐 묻는다면 영화의 키 포인트, 배우 박서준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최반장(손현주 분)이 저지른 살인을 눈치채고는 심적 갈등을 겪는 동재 역을 맡은 박서준은 쟁쟁한 선배 배우들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으로 '악의 연대기' 흥행에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제야 왜 스크린에 온걸까.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말에 쑥스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며 웃던 박서준은 영화라는 장르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걱정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고 밝혔다. 영화가 주는 묘한 긴장감과 '악의 연대기' 시나리오의 재미는 첫 데뷔작을 어떤 계산하에 선택해야 한다는 것들마저 잊어버리게 했다. 그저 시나리오가 재밌었고, 역할이 탐났고 스크린 속 자신이 궁금했다.
"제가 그간 로맨스 연기를 주로 보여드렸는데 스크린 데뷔작도 그런 연기로 해야겠다, 이런 계산은 없었어요. 역할이 매력 있었죠. 정말 탐낼 만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드라마만 했었으니까 영화에서 나는 어떨까, 어떻게 보여질까, 이런 톤이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기대와 걱정이 있었어요. 장르까지 심도 있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고 역할과 이야기가 재밌어서 제가 첫 데뷔지만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함께 하게 된 거죠."
충무로가 그에게 거는 기대들을 조심스레 이야기하니 기분 좋게 웃다가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아직 한참 멀었어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고, '악의 연대기'에서의 본인 연기에 혹독한 평가를 내린 박서준은 "전 아직까지 배우고 있는 중이니까요"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사실 걱정이 컸어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거든요. 저는 제 자신에 냉정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야만 발전이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악의 연대기'에서 제 연기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보이더라고요.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아직도 계속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이제 충무로에 첫 발을 내딛은 그를 앞으로도 계속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걸까. 박서준은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도전도 좋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지금의 박서준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이 생각 깊은 배우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특정 매체를 선호한다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 그리고 역할인 것 같아요. 이야기와 역할이 좋더라도 제가 자신이 없거나 제가 하기엔 부담스럽거나 어려울 것 같은 것들은 도전을 해볼 순 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거든요. 지금 느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앞으로 하고 싶어요. 30대가 되면 그때 맞는 역할이 있을 수 있는 거고요. 제게 맞지 않는 옷을 찾는 것 보다는 제가 자신감있고 제가 잘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들, 그런 걸 하고 싶어요."
자신감 있는 연기라..그가 그동안 많이 선보였던 로맨스 연기를 말하는걸까. 그런 것만 계속하다보면 지금의 '연하남' 이미지가 굳어버리는건 아닐까. 개인적인 조바심에 물으니 "로맨스 연기도 할때마다 달라요"라며 환하게 웃어보인 그다. 그리고는 "물론 그것만 할 수는 없죠. 조금씩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거에요"라고 또 한 번 웃어보였다.
"로맨스 연기요? 재밌어요. 할때마다 다르거든요. 사실 연기자에게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하죠. 어떻게 보면 다양한 걸 하고 싶어하는 것도 맞는 생각인 것 같고 이미지 메이킹도 중요한데 이미지를 만든다고 해서 똑같은 역할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것만 하면 재미없죠. 누가 또 보려고 하겠어요. 적어도 조금씩은 다른 걸 해야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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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