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방송인 김제동의 ‘김태호 PD 양아치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었다.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포상 휴가를 미끼로 멤버들을 극한 도전의 수렁으로 밀어넣으며 제대로 밀고 당기기를 했다. 설마 했는데, 또 사기를 친 김태호 PD의 작전은 10주년이라는 기념비를 세워올린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매력 중에 하나였다.
지난 23일 방송된 ‘무한도전’은 10주년 포상 휴가를 앞두고 불신이 팽배한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대형 비행기 끌기에 성공하면 포상 휴가라는 달콤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는데, 평소보다 느슨하게 도전 과제를 수행하는 제작진의 밑밥부터 시청자들을 갸우뚱하게 했다. 언제나 멤버들을 속여서 재밌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김태호 PD가 아니던가.
‘무한도전’ 멤버들과 제작진에게 하도 속았던 김제동은 지난 해 김태호 PD에 대해 ‘양아치’라는 격한 표현을 써가며 장난 섞인 비난을 한 적이 있다. 명절에 급하게 촬영에 참여했지만 통편집을 당하고, 밤중에 불려나와서 배추 강매를 당한 후 김제동은 김태호 PD를 ‘양아치’로 명명했다. 김제동의 웃기기 위해 만든 ‘짜증 섞인 삿대질 상황극’은 김태호 PD가 사기 행각으로 웃음을 형성할 때마다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여러차례 비행기 끌기 기회를 주며 어떻게든 포상 휴가를 떠나려고 하는 제작진의 평소와 다른 모습은 포상 휴가에 또 다른 숨은 의도가 담겨 있음을 알게 했다. 이미 방송 전 멤버들이 태국 휴양지가 아닌 중국 산악 지대에서 가마꾼이 돼 있거나, 인도 빨래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이 공개된 바 있다. 멤버들 역시 제작진이 사기를 꾸밀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언제나 고생스러운 도전을 자처하는 프로그램이기에 10주년 포상 휴가를 마냥 달콤하게 지키지 않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더욱이 이미 지난 해 태국 방콕으로 떠나는 줄 알았지만 국내 옥탑방에서 ‘방에 콕 처박혀 있었던’ 경험이 있는 터라 이 같은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짙었다. 결국 태국 공항에서 지난 해 11월 못다 수행한 ‘극한 알바’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멤버들의 분노 섞인 항의가 펼쳐졌다. 이 프로그램을 10년째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예상했지만 실제로 또 벌어진 제작진의 사기 행각에 웃음을 터뜨렸다.
태국에 도착한 까닭에 어느 정도 불신을 지우고 안심했던 멤버들의 진심 어린 짜증은 그동안 휴가라는 명목 아래 제작진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모습이 겹쳐지며 재미를 선사했다. 외딴 무인도에서 생고생을 하고, 하와이에서 극기 훈련 버금가는 도전을 하고, 공항까지 가서 서울 모처 옥탑방으로 돌아와야 했던 멤버들이었다. 그래서 멤버들은 공항에서 끝도 없이 의심을 품었고, 제작진에게 진짜 포상 휴가가 맞는 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김태호 PD의 재기발랄한 거짓말과 하도 당해서 믿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 한줄기 희망의 빛을 붙들고 있었던 멤버들의 의구심과 결국 실망하는 표정은 왜 이 프로그램이 그토록 꽁꽁 싸매며 철통보안을 지키는지 이유를 알 수 있게 했다. 사실 ‘무한도전’은 정보를 알아내려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멤버들에게도 소수의 정보만 제공하며 뒤통수를 치는 재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언제나 보안을 깨려는 기자 혹은 네티즌과 이를 지키려는 제작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태국으로 출국 전까지, 그리고 각자 흩어져 온갖 고생하는 모습이 수많은 해외 네티즌에게 포착되기 전까지 이번 포상 휴가의 비밀은 공개되지 않고 지켜졌다. 공항에서 믿지 못하는 멤버들과 기자들에게 “진짜 쉬러 가는 것”이라고 강조하던 김태호 PD. 그럼에도 어디 가서 고생할 것이라고 예측하던 이 프로그램의 숱한 팬들의 정말 몰라서 속아주고, 알고도 속아주는 ‘밀고 당기기’가 10년 넘게 보고 있어도 상당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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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