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연애’는 로맨틱 코미디 위주인 한국 드라마를 비판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주인공들의 직업이 무엇이고, 배경이 어떠하든 결국에는 연애로 시작해 연애로 끝난다는 점을 비꼬아 한 표현인데, KBS 2TV 예능드라마 ‘프로듀사’(극본 박지은 연출 표민수 서수민)는 극의 로맨스를 잘 살리면서도 단순한 ‘기승전연애’를 피해가는 높은 완성도로 재미를 주고 있다.
‘프로듀사’가 그렇고 그런 ‘기승전연애’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예능드라마라는 실험적 성격과 방송국 내부의 모습을 비교적 세밀하게 그려낸 ‘디테일’에 있다. ‘명작은 디테일’이라 했던가, ‘프로듀사’는 겉멋 든 전문가가 아닌 치열한 경쟁 속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양한 ‘고스펙 허당’들의 모습을 유쾌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리며 ‘리얼’함과 더불어, 다분히 풍자적인 코미디를 동시에 살려내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인물들의 캐릭터다. 출연자에게 하차 통보를 하지 못해 막내 PD에게 이를 떠맡기는 주인공 라준모(차태현 분), 아이돌 가수의 의상을 체크하며 큰 소리를 쳤다가도 행여, 그가 출연을 거부할까 타협을 하는 탁예진 등 주인공의 캐릭터부터 아부와 허풍을 동시에 떨며 조율하기 바쁜 김태호 부장(박혁권 분), 방송국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연락을 주고받는 매니저들의 풍경까지, 박지은 작가는 어느 것 하나 놓칠세라 방송국 안팎의 모습을 꼼꼼하게 묘사하는 데 상당한 힘을 쓰고 있다.
‘프로듀사’의 실험적(?) ‘리얼’함은 대사에서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극 중 예능국장 장인표(서기철 분)는 “나영석을 다시 데려올 수 없느냐”고 KBS를 떠난 나영석PD의 실명을 언급한다. 또 시청률 부진으로 종영한 ‘투명인간’을 언급, KBS 예능국을 향한 ‘셀프디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1박2일’ PD 라준모는 새 멤버로 수지를 데려오기 위해 직접 JYP(박진영)에게 섭외를 하러 가기도 하고, 유희열, 윤종신, 전현무 등은 서로를 견제하며 ‘1박2일’ 새 멤버 후보들의 기 싸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과장되긴 했지만, 지상파 방송국, 예능국에서 있을 법한 고충들이다.
보통의 드라마들은 철저히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프로듀사’는 가상임에도 불구, 때때로 실명과 실존 인물들이 등장해 사실적인 묘사를 돕는다. 이는 웃음을 주는 장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보는 시청자들로 예능국을 좀 더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방송국의 한 면을 보고 있다는 실감을 주기도 한다. 묘사가 섬세할수록 시청자들의 몰입은 더 커진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 방송국이라는 배경은 연애를 묘사하기 위한 액세서리로 소모되지 않았다. 주인공들이 지지고 볶는 예능국은, 다른 배경이면 안 될 고유성을 갖게 됐다. 전형적인 ‘기승전연애’ 작품은 배경이 어디여도 상관없는 흔한 로맨스라는 점에 그 특징이 있지만, ‘프로듀사’ 속 인물들의 로맨스는 방송국이라는 배경을 떠나서는 이뤄질 수 없다. 신디가 유명 가수가 아니라면, 신입PD 승찬과의 로맨스가 이처럼 유쾌하고도 설레게 그려질 수 없다. 쌈닭 탁예진의 직업이 PD가 아닌 평범한 커리어우먼이었다면, 자유분방하면서도 거침없는 개성이 설득력을 얻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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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사'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