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범행에 쓰였던 '복면'이 최근들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앞으로 복면이라는 단어는 '도전' '용기' 등 희망적인 뜻으로 풀이될 듯 하다. MBC 예능 '복면가왕'과 KBS 2TV 드라마 '복면검사'가 복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청자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서다.
'복면'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존재를 숨기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 내가 누군지 맞혀보라는 1차적인 의미는 아니다. 존재를 가릴 방법은 복면이 아니고서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복면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적잖은 오해에 시달렸던 내가, 복면을 통해 그 거지 같은 편견을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 드러나지 못했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센 언니' '섹시 가수'라는 이미지에 갇혀왔던 가수 가희와 지나는 '복면'을 통해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노래 실력을 인정받았고, 설리 크리스탈 등 인기 멤버들에게 가려져 있던 에프엑스 루나도 오로지 자신의 이름만으로 대중 앞에 설 수 있게 됐다. 누군가는 자신의 인지도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복면이 그들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고마운 존재가 된 셈이다.
스타들은 늘 새로운 것을 들고 신선함을 안겨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이미지에만 갇혀 정체돼 있던 시간, 자칫 그렇게 멈춰버릴 수도 있었던 시간이 복면을 통해 다시 가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복면은 호기심 자극과 동시에 숨겨진 가창력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스타들에게는 그간의 오해를 접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됐다.
드라마 '복면검사'는 검사라는 신분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법 위에 있는 사람을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정의가 무너진 이 세상에서 복면을 쓰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얼굴과 신분을 가리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쓰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나쁜놈'에게 날리는 시원한 하이킥이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우리 사회에 진실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직접 느끼고 싶은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26일 OSEN과의 통화에서 "복면을 쓰고 나오는 모습이 일단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다. 화려한 복면과 코믹한 예명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며 "복면을 쓴 그 사람에 대한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 호기심이 극대화되며 음악에 더 집중을 하게 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고 밝혔다.
이어 "시청자들은 스타가 복면을 벗었을 때 느끼는 정서적인 충격, 생각치 못했던 재미를 느끼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에게서 의외성을 발견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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