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 벌어진다. 용의자를 사라지고, 형사는 용의자의 여자를 주시한다. 형사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용의자의 여자에게 접근하고, 두 사람은 함께 일하는 사이가 된다.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동료 이상의 감정이 흐른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무뢰한'(감독 오승욱, 제작 사나이픽처스)의 줄거리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형사는 분명 용의자의 여자를 마음에 품을 것이며, 용의자의 여자는 형사와 연인 사이에서 갈등할 것이란 추측이다. 중반부까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전형성에서 빠져나간다. 그 지점에서부터 영화 제목 그대로, 염치와 예의를 상실한 무뢰한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의 미덕은 두 남녀 혜경(전도연)과 재곤(김남길)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이다. 초반부는 혜경을 바라보는 재곤의 묘한 시선이, 후반부는 두 사람을 감싸는 팽팽한 성적 긴장감이 보는 이를 짓누른다. 느린 호흡과 어두운 분위기, 행간을 읽어야 하는 대사에는 묵직한 무엇이 있다. 결국 '상처에 상처가 더해지는' 찝찝함을 남기며 마무리 되는데, 묘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중요한 장면들은 모두 술과 연결돼 있다. 일터에서 지난한 밤을 보내고 아침이 찾아오기 직전인 이른 새벽 두 사람은 소주를 마신다. 해장국집에서, 혜경의 집에서 그들을 서로에게 술잔을 건넨다. 오가는 술잔에는 담긴 감정은 진심이지만, 오가는 말은 진심과 거리가 멀다. 영화 '킬리만자로' 이후 15년 만에 돌아온 오승욱 감독은 이와 같은 비겁함과 알싸함을 '무뢰한'에 꾹꾹 눌러 담아냈다.
이기적이고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이지만, 정작 가장 빛나는 인물은 홍일점 혜경이다. 화려했던 지난날을 뒤로 희망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변두리 단란주점 마담이다. 극중 남성들에게 늘 이용당하는 약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강인한 인물이다. 전도연은 희미한 미소로 사연 많은 여자의 삶을 표현하는데, 때론 지친 표정에서 드러나는 애환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전도연이란 이름값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4일 폐막한 제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이다.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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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픽처스